[성경신자의 의무 ㅡ '그 성경기록들을 상고(祥考)하라'(요한복음 5:39)] 찬송가 '나같은 죄인 살리신' 가사의 주인공이신  존 뉴톤(John Newton)과 '회심'의 아이콘이신 존 웨슬리(John Wesley) 두 목회자님과 함께 18세기 영국이 낳은 복음의 3대 거성이신 조지 화잇필드(George Whitefield) 목회자님의 설교를, 본 자료에 들어가시기 전에 꼬옥 한번 읽어보시도록 권해드립니다. [복음선교문서 컬렉션4] 성경기록들의 파헤침의 의무 <자세히보기>.

이미 알려드린 바 같이, 성경 속에 감추어진 '십일조'의 진리를 펼칩니다. 우선 10년만에 이 자료를 공개하게 된데 대해 예호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어려웠던 역경을 거쳐 갖은 '공격'을 이겨낸 것이 오늘 이렇게 하나님 앞에 드러냄과 모든 영광을 그분에게 돌려드립니다. 성경은 <창세기1:1>로부터 <요한계시록 22:21> 끝까지 예슈아님을 시작으로 해서 예슈아님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 중에 감추어져서 드러나지 않은 주제어 중 하나가 바로 '십일조'입니다. 이미 앞에 올려 놓은 <제1부>에서는 [아브라함의 십일조 속에 숨겨진 비밀]를 풀어드렸습니다. 이제부터 <제2부>에서는 [성경에서 십일조의 계획 및 출발] 주제하에 세 차례에 걸쳐서 다루게 될 것입니다. 10년전에 풀어 놓은 주제를 이제서야 올려드리지만, 그 감회는 사뭇 홀가분함을 느낍니다.
오늘날 이 마지막 때인 <복음선교시대>에서는 <엔크리스투> 곧 <진리 안에서 하나됨 곧 호모로게스=예슈아化>된 '너희들'(제자들)인 '성경신자들'이 <참십일조>인 줄 믿습니다!! 아무쪼록 <가정예배시간>에 많은 활용을 부탁드립니다. 샬롬. (2012.6.2/오후)


2. 성경에서 십일조의 계획 및 출발

[본문 ㅡ 창세기 제6장 1-3절]

6:1그리고 아담 그 사람이 그 대지의 얼굴 위에 많아지고, 자기들을 위하여 딸들이 낳기 시작하게 되니,

6:2그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담 그 사람의 딸들, 곧 그들이 선함을 보고는, 그 아들들이 택한 모두를 자기들을 위하여 아내들로 취하였다.

6:3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시되, '내 영이 영원을 향하여 아담 그 사람 안에 남아있지 않으리니, 이는 그도 역시 살임이라. 그러나 그의 날들은 일백이십 년이 될 것이다.' 하셨다.


성경적으로 십일조를 언급하면, 최초로 아브라함이 멜키세덱에게 드린 사건(창세기 14:20)을 다룬다. 그러나 성도 바울은 이 멜카세덱'에 관해서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호소와 경고를 하신다. (히브리서 6:11). 이 경고의 말씀을 깊이 새겨두고 <창세기>를 번역하는 중에, 필자는 <창세기 6:3>에 이르러 <십일조 의미>가 담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날들은 일백이십 년이 될 것이다.'

[미니풀이] '이십'(twenty)=히브리어 기수 '에스림'(eesrim=H6242) 으로 기수 '열, 십'(에세르=eser=H6235)이 그 어근이다. 그리고 '에세르'는 '아사르'(asar=H6237) 에서 파생되었다. 성경수론에서 '일=1, 십=10, 백=100, 천=1000)은 엘로힘 하나님 만이 사용하시는 숫자표식이다. 그리고 숫자 '이십'은 '십일조를 드리다'(창세기 28:22, 신명기 14:22, 느헤미야 10:38)를 그 어근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후 '그 아담'의 후손들은 <예호바 하나님에게 십일조를 드리다>와 직결됨을 그 예표로 보여주는 것이다. 즉 '모든 날들' 동안에 '그 아담'의 후손들은 예호바에게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숙명적인 '창조물'의 운명인 것이다. 성경수론에서 '일백이십년'(120년)은 <120=12x10>으로서 예호바께서만이 관리하시는 숫자로서, 이미 <구언약>에서의 <12지파>와 <신언약>에서의 <12제자>라고 하는 기초어인 숫자 <12>가 예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언약>은 예호바의 선민 '이스라엘민족'을 <12지파>로 구분하여서 다룬 일종의 역사서로서의 <십일조의 그림자>를 다룬 것이다. (히브리서 10:1). 자세한 것은 <창세기 28:22>에 가서 자세하게 언급될 것이다 (창세기 7:20; 8:4 비교).

하늘의 창들과 십일조(창세기 6-8장)

본장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주제를 다룰 것이다:

    1. '하늘의 창들'은 십일조와 직결
    2. 십일조의 근거

    3. 노아의 방주와 십일조


3. 노아의 방주와 십일조


여기서
'하늘의 창들'(the windows of heaven)은 히브리원어 '아룹바'(H699)로서(창세기 7:11; 8:2. 열왕기하 7:2,19. 전도서 12:3. 이사야 24:18; 60:8. 호세아 13:3. 말라키 3:10), 큰 소나기가 내릴 때 열려지는 창으로 '홍수문들'(floodgates)이다.


◆본 이미지는 필자가 10년전 2002년에 컴퓨터학원(국비보조)에서 배운 <일러스트레이터 7.0>으로 그려 본 것이다. 지금은 다 잊어 버렸다.


앞에서(1. 노아의 방주:창세기 6-8장) 설명하고 풀어 본 세 가지와는 다르다. 여기서 한 가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하늘의 창들'과 관련된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방주 안에 들어있는 노아와 그의 가족과 짐승들은 안전하게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다만 노아가 알고 있는 것은, 그 땅이 부패하였으므로, 심히 슬퍼하신 하나님이 40일 낮과 40일 밤에 '홍수문들'을 열어놓아, 그 땅을 쓸어버리신다는 것 외에는 노아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창조자이신 엘로힘언약자이신 예호바께서 '새창조'로 드려지는 '참십일조'를 원하시는 구속사적 계획이 웅장하게 펼쳐지고 있는 하나의 파노라마가 아닐 수 없다!! 방주 안에 들어간 노아와 그의 가족은 오직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말씀만을 믿는 것 이외는 달리 아무런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하나님께로부터 경고를 받고, 두려움으로 행하여, 한 방주를 예비함으로 자기 집 안을 구원하였으니, 이로써 그는 그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으로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 (히브리서 11:7)


이것이 바로 믿음인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소망하는 것들에 대한 기초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인 것이다.(히브리서 11:1). <믿음은 고난의 열매이다/자세히보기>. 노아는 이처럼 보이지 않았고, 볼 수도 없었지만, 365일간(유대력 1년 11일=양력1년: 창세기 8:14 '그 달 이십칠 일' 풀이 참조)을 방주 안에서 오로지 '믿음'만으로 살 수 있었고, '새창조'로서의 '참십일조'가 될 수 있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하늘의 창들이 열림'은, 언약자이신 주 예호바께서 선지자 <말라키>를 통해서 아주 놀라운 비밀의 언약으로 더욱 구체화 되어버린다. 그리고 <구언약>은 접어지고, 크리스투를 통한 '일방 언약'인 <신언약=신유언>이 펼쳐지기로 되어 있는 것이다.

    만군의 주가 말하노니, 너희는 모든 십일조들을 그 창고 안으로 들여와, 내 짐 안에서 먹이로 쓰이게 하고, 이제부터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라. 그렇게 하고 나서 내가 너희에게 하늘의 그 창들을 열어놓고, 너희를 비워 한 복받음을 부어주지 않나 보라.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충분한 여지가 없을 것이다. (말라키 3:10).


이것은 논란이 많은 구절이다. <말라키서> 자체가 '십일조'에 대한 '예표적 결말'이기 때문에, 해석이 구구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필자가 자신있게 입증할 수 있음은, '참십일조는 물질지향적인 레위 지파가 드린 '율법적인 십일조'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열에서 나온 유다 지파의 '은혜적 십일조'로서의 예슈아 크리스투를 일컬음이니, <히브리서 5-7장>을 잘 정독하고, 상고하시기 바란다.

<창세기 6-8장>에서의 홍수로 인한 '하늘의 창들이 열림'이 출발점이라 한다면, 본절에서의 '하늘의 그 창들을 열어놓고' 복주신다고 약속하심은, 하늘의 '수문'(水門)이 열리는 그 종착점으로서 복주심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복주심의 그 양을 언급하심이 아니라, 복주심의 그 영원성을 강조하신 점을 혼돈하지 않기를 바란다 (창세기 7:11; 8:2. 열왕기하 7:2,19. 전도서 12:3. 이사야 24:18; 60:8. 호세아 13:3. 말라키 3:10 참조할 것). 그리고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 풀이를 해 놓았으니, 필자의 강해 <1998 여름특별 킹제임스성경세미나: 십일조(?)>를 반드시 참고하기 바란다.

그리고는 <말라키 4:2>에 '의의 해가 떠오를 것'이라고 하면서, <그 메시야>의 이 땅에 오심을 예언하고는, <구언약>의 대단원의 막은 닫혀 버린다.

이것은 약400년간 <그 말씀의 침묵기>(신구언약 중간시대)를 거친 후에, 예루살렘 밖, 곧 '광야 안에서 외치는 자의 한 음성이 있다고'(이사야 40:3-5) 외치는 밥팁례자(밥티스트) 요안이 등장하면서, <신언약>의 막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요안의 사역은 크리스투의 오심을 선포한 후, 그분의 그 길을 펼쳐 놓는 것으로 자기의 사역을 다한다. 그런 후에, 예슈아님이 이 땅 안에 오셔서, '죄인이요, 잃은 자'인 '참십일조'를 찾으신 것이다. (마태복음 18:12-14). 이것이 예슈아님의 전도사역의 핵심이었다. <요안복음 17장>을 주의 깊게 읽고 상고하시기 바란다.

예슈아님 뒤를 이어서 오순절 날 '위로부터 임하신 그 능력을'(사도행적 2:4) 받고서 담대하게 나선 것이 성도(사도)들의 복음전도였다. 그 성도(사도)들의 뒤를 이어, 오직 참말씀 만을 전하다가, 참말씀 때문에, 그 엄청난 박해를 받다가 죽어 간 순교자들의 그 반열에, 비록 그 규모는 적을지라도, 지금까지 하나님의 참말씀을 위해 사명을 다하는 '성경 신자들'(Bible Believers)이 이어오고 있다. 바로 필자요, 필자와 함께 이 사역을 감당하는 동역자들이요, 바로 이 글을 읽고 깨달은 바로 '당신'인 것이다.

'밥티스트'(Baptists)니 '밥타이저'(Baptizers)니 하는 막연한 의미와,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당사자들(이 글을 쓰기 전까지 교제해 왔던)에게 너무 식상을 한 필자로서는 이를 단연코 거부하는 것이다!! 그들이 '한 몸'으로 연합되는 꼴을 본 적도 없고, 체험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조금만 배워서 알게 되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신성한 모임인 성경적인 '회중'(교회)를 슬그머니 떠나, 또 다른 '당'을 짓는다. 이것이 현실인 것을 그 누가 막느냐 말이다. 그러나 필자가 소망을 가짐은, 주님이 위로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오직 나의 아버지만 아시도다. 그러나 노아의 날들과 같이, 사람의 그 아들의 오는 것도 그러하리니, 이는 홍수 이전의 날들에 노아가 방주 안으로 들어가던 그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다가, 그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쓸어버릴 때까지 그들이 알지 못하였던 것 같이, 사람의 그 아들의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마태오복음 24:36-39).


위 구절은 예슈아님이 이 세상 마지막 때(종말)을 예언하신 말씀이다. 주님의 다시오심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는 비밀이다. 즉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다가'는 멸망당하니까, 노아와 같이 행하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역설적인 비유법으로 해석하면 풀리는 말씀이다:

    '노아와 같이 행하라.'
    '어떻게?'
    '방주 속으로 들어가라(반드시 믿음이 선행)'
    '그리고 시험을 이겨내라'
    '그리하면 새창조 즉 참십일조가 되어 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다.'



'하나님의 그 왕국'에로 향하여 가는 길은 이렇게 간단하다. 전혀 종교적인 색채(교파/교리)가 포함되지 않는다. 오직 '그 말씀' 만을 준행하면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2002.4.11-4.19 작성>.

 
<Created/20120625> <Updated/2012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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