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스페셜 ㅡ 참다운 십일조의 진실 1]  구약에서의 그림자였던 '십일조'가 신약에서 예수님이 '십일조'의 실체를 직접 증거하신다. 바로 '아버지께서 내게 주셨던 그들'(요한복음 17:2,6,6,9,11,12,24)이 바로 '십일조'이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셨던 그들을 아버지 자신의
이름으로 지켜주셔서,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하소서.
<요한복음 17:11, KJV화중광야역>

Holy Father, keep through thine own name those whom
thou hast given me
,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
<John 17:11, KJV>


[제4차 킹제임스성경세미나] 주제 / 십일조

글ㆍ강의/ 정재선 목회자


[알립니다] 성경주제상 '십일조'는 매우 민감한 주제입니다. 필자가 1998년에 발표하였던 본 자료를 드디어 11년만에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혹여 본 주제를 청취하시거나 읽으시다가 '반감'(?)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 막무가내식으로 '힐난' 내지 '비난'을 앞세우지 마시고, 성경기록의 차원에서 되새김질 해보는 기회로 삼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본 자료는 기존의 그리스도교의 신앙질서를 경고함이 아니라, 오로지 성경적인 새로운 방향에로의 모색을 시도함이라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에 독자 여러분의 오해가 없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2009.11.19)


[들어가는 말]


제1부-교회시대의 십일조 헌금론에 대한 구속사적 이해
(장수민 목회자의 '개혁사경회' 참석자료를 중심으로)
(제4차 킹제임스성경세미나 주제 ㅡ 십일조 (1998.8.14)

●본문 시놉시스 (작업중)


제2부-교회시대의 십일조 헌금론에 대한 구속사적 이해
(장수민 목회자의 '개혁사경회' 참석자료를 중심으로)
(제4차 킹제임스성경세미나 주제 ㅡ 십일조 (1998.8.14) (작업중)

●본문 시놉시스 (작업중)


[필독관련자료]


1. [화중광야 복음선교문서 콜렉션 14] 8복(八福)과 8화(八禍) ㅡ [1]
8복(八福)은 '참십일조'(제자들/너희들)의 것
<자세히보기>


2. [화중광야 복음 교문서 콜렉션 25] 8복(八福)과 8화(八禍) ㅡ [3]
8화(八禍)는 '위선자들'(가짜 십일조)의 것 <자세히보기>

3. [멜키세덱이란 누구인가?]

멜키세덱에 대한 구약성경의 기록은 <창세기 14:17-20>과 <시편110:4> 뿐이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왕이며 제사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그의 반열을 따라서 난 것이었다. 멜키세덱과 그리스도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①하나님께서 직접 임명하셨다는 것. ②제사장의 직분이 영원하다는 것. ③왕인 동시에 제사장이라는 것. ④레위 지파 출신이 아니라는 것.


※멜키세덱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받은 십일조는 무엇인가?

1. 전리품(spoils)의 십분의 일이다.

2. 십분의 일은 전리품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다.

3. 아브라함과 롯의 관계=신정사(神政史) 관계



1) 롯은 아브라함의 품 안에 있어야 한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과 고모라 안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셨다. (창세기 19장).

2) 이방인에게 빼앗긴 롯(재물/여자들/하속들)을 되찾아 왔다:

    그리고 그는 모든 재물을 되찾아 왔고, 그의 혈육 롯과, 그의 재물과, 여자들과 삶들도 다시 찾아 왔다. (창세기 14:16, KJV화중광야역)


※율법적인 십일조 중에서 제일 먼저 드린 것은 무엇인가?

1. '우리의 자손들과 가축 중에서 첫태생(The First Born)을 드림' (느헤미야 10:36).

1) 땅의 소산의 십분의 일, 곡식의 십분의 일을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율법에 따라 드린 십일조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드린 첫태생(첫아들=맏아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다. 따라서 율법적인 십일조를 전부 '물질'로 생각하는데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2) 이 첫태생, 곧 맏아들을 통해서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의도와 그 계획을 '멜키세덱'이라고 하는 '그 그림자'를 통해서 말씀해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율법 안에 있는 자들이 이 의도를 깨닫기 어렵기 때문에, '의의 말씀을 먹고 능숙한 자 만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5:11-14). 왜 그런가? '하나님의 의도'(하나님의 주권적 의지/God's Sovereign Will)는 감추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율법적 십일조와 은혜적 십일조의 상관성은 무엇인가?


율법적 십일조(물질/돈)

 

은혜적 십일조(복과 연관)


[히브리서 7:5]
진실로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서 제사장 직분을 받는 자들은, 비록 그들이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왔을지라도, 율법에 따라 그 백성 곧 자기 형제들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계명을 받았으나
 
[히브리서 7:6]
레위인들의 계보에 들지 아니한 멜키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아드렸고, '그 약속들'을 얻은 그를 축복해 주었느니라.

[상태]
1) 죽었던 '내가' 다시 살아난 사건이 안되면(욥기 8:7-8=시작/레쉬트=옛사람=구약의 열조들), 율법을 따르게 되는데, 이 율법 때문에 '죄를 더 짓게 되고'(로마서 5:20), 율법을 행하여 구원받으려는 자는 은혜(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나간 자이다.

2) 율법의 시대는 밥팀례자 요한(John The Baptist)까지요 (마태복 11:13. 누가복음 16:16), 율법을 다 지킨 자는 한 명도 존재하지 하지 않는다. 따라서 율법 안에 있는 자는 '젖먹이 아기' 같아서 멜키세덱에 관하여 듣고 이해하는 것이 둔하여 어렵다는 것이다(히브리서 5:11).

 

[상태]
1) '더 좋은 것으로 약속되어 있는 비밀'ㅡ구약시대에는 많은 믿음의 영웅들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그 약속을 보지 못하였으며, 다만 '그 약속'이 성취되리라는 사실을 듣고 믿었을 뿐이다. '그 약속'은 죽은 후에 받을 '복받음'(Blessing)에 관한 것이 아니라, 메시야(그리스도)의 도래를 뜻한다.(히브리서 11:32-39). 따라서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구원의 완전성을 경험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이 그것을 그들에게 허용치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완전함에 이룰 수 있는 더 좋은 것, 즉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하여 생명의 그 길에 이를 수 있는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다. (히브리서 11:40).


※멜키세덱이란 누구인가?

구약시대에서 대제사장은 레위 지파 가운데서 선발되고 임명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다. 그런데 <히브리서>에 기록되어 있는 멜키세덱은...부모가 누구인가...어디서 태어났는가...어떻게 운명했는가...하는 것이 알려지지 않은채 대제사장의 직분을 맡고 있다.

1. 십일조를 받은 분이시다!!

2. 영원히 한 제사장이시다!!

3.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의인을 찾으신다!! (창세기 27:1-40/ '그 별미와 그 빵' ㅡ '제4차 킹제임스성경세미나 '맺는말'에서 풀어짐)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신다!!:

    I came not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 (Luke 5:32, KJV)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들을 불러 회개에 이르게 하려고 왔노라. (누가복음 5:32, KJV화중광야역)


예수님은 죄인을 찾아서 의인으로 회복시켜서 하나님 그 아버지께 되돌려 드린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그 아버지가 자기에게 보내주신 자들에 관하여 마지막으로 기도하신다. 이 기도의 내용을 잘 깨달아야 성경에서 말씀하는 '참다운 십일조'의 진실이 깨달아진다. 구약에서는 '십일조'의 그림자로서 성막 안에서와 성전 안에서 물질, 곧 첫태생과 첫열매(맏물)이 하나님께 드려졌던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의 의도하심과 전혀 다른 '변질된 십일조'가 성행하자,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경고하셨고(말라키 1:6-14), 구약시대는 막을 내린다.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이 '그 유태인들'(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아직도 구약시대의 십일조에 매여 있음을 견책하셨고(마태복음 23:23): '위선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를 향하여 화가 임하리라! 이는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공의와, 긍휼과 믿음인 그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들은 빠뜨려 왔기 때문이라. 너희는 이것들도 마땅히 실행해야 하고, 저것들도 저버리지 말아야 하느니라.' 오늘날 '십일조'를 물질(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측은 본 구절을 앞세운다. 예수님도 '십일조'를 허락하셨다고 말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예수님 이후 사도들의 경우는 '십일조'를 실행하였다는 성경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히브리서 7장>에 가서야 사도 바울이 '십일조'를 언급하면서,
아론의 대제사장의 직분 보다 더 크신 멜키세덱의 대제사장 직분을 소개한다. 멜키세덱에 관하여 들어도 깨달음이 둔하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고백한다 (히브리서5:11). 멜키세덱이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취하셨고, 레위인들이 받는 '십일조'까지도 아브라함 안에서 '십일조'를 바친 것이요, 이는 조상의 행위가 그 후손에게 까지 포함시키는 것이 성경이 흔히 사용하는 표현방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7:9-10). 이로써 '십일조'는 두 가지 흐름, 곧 '율법적 십일조'와 '은혜적 십일조'가 성경 속에 흐르고 있었다. 전자는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 예수님이 이 땅 위에 공생애 동안 전도사역하시는 동안 언급된다. 후자의 경우는, 계속 숨겨져 오다가 사도 바울을 통해서 <히브리서>에서 멜키세덱이 재등장하면서 펼쳐진다.


그런데 필자는 성경을 번역해오던 중에, <말라키 3:6>의 '그러므로 너희 야콥의 아들들은 소멸되지 않느니라.' 이 말씀에 시선을 집중하게 되었다!!

필자가 작성한 위 도표에서 보듯이, 야콥의 아들들 곧 후손들은 '이스라엘 민족'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콥을 통해서 의인을 찾으신다. 이 의인은 <창세기 6:1-4> 초반에 언급되는 '네필림'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필림'은 '혼합'을 예표한다. '하나님의 아들들과사람의 딸들의 혼합체'이다. 본래의 집 즉 본향을 떠나간 자들(누가복음 10:18), '떨어져나간 자들'을 상징한다. (정재선 목회자의 성경바로알기 ㅡ 네필림의 정체는 무엇인가?/자세히보기).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루시퍼의 반란에 동조하였기 때문이며, 루시퍼의 '야망'(내가 ... 하겠다/I will...)은 다음과 같이 5가지였다(이사야 14:13-14):

    ① '내가 하늘 속으로로 오르겠다'(I will ascend into heaven) ㅡ 하늘 보좌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려고. (14:13)

    ② '내가 나의 보좌를 하나님의 그 별들 보다 높이겠다'(I will exalt my throne above the stars of God) ㅡ 천사들의 세계를 완전히 장악하려고.  (14:13)

    ③ '내가 그 회중의 그 산 위에 앉겠다'(I will sit also upon the mount of the congregation) ㅡ 심판을 위한 하나님의 회중(집회)까지 다 장악하려고.  (14:13)

    ④ 내가 그 구름들의 그 높은 곳들 위로 오르겠다'(I will ascend above the heights of the clouds) ㅡ 하나님께만 속한 영광을 차지할려고.  (14:14)

    ⑤ '내가 가장 높으신 분 같이 되겠다'(I will be like the most High) ㅡ 피조물이 하나님 같이 되려고.  (14:14)


그런데 결국은 루시퍼(사탄)은 하늘로부터 떨어졌고, 땅으로 끊어져 내려 버렸으니(이사야 14:12), 이는 성품(본질)이 속이고, 부정직하며, 두루다니면서 동경의 대상이 되자 스스로 높아져 교만해졌으며, 그 결과 변질되어 죄를 짓고 말았다(에스겔 28:13-19).

이들은 땅으로 내려와서 사람의 딸들과 혼합하여 '죄인'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그리하여 '잃은자'가 신세되어 죽기까지 나그네로 유리(시편 119:176), 방황하다가(이사야 35:8)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구원에 이르게 되어(마태복음 18:11-14. 누가복음 15:3-7),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의 모습으로(성화) 본래의 집으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성경기록의 중심 맥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나님 그 아버지에게 순종하사,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생을 마감하시게 됨을 직감하셨고, 유태교의 종교인들에게 붙잡히시기 얼마 전에 '그 아버지'에게 기도하신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기도의 장'으로 알려진 <요한복음 17장>이다: ①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1-5절), ②예수님 자신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6-19절), ③예수님과 그 제자들과 그 제자들과 함께 믿어야 하는 자들을 위한 기도(20-26절):

    버지가 그 아들에게 주신 만큼 그 아들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게 하려 하심이나이다. (17:2)

    아버지께서 그 세상으로부터 나에게 주셨던 그 사람들을 향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 드렸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17:6)

    아버지께서 나에게 그들을 주셨고, 그리고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켜왔나이다. (17:6)

    아버지가 나에게 주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오니, 이는 그들이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이나이다. (17:9)

    아버지께서 내게 주셨던 그들을
    아버지 자신의 이름으로 지켜주셔서,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하소서. (17:11)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그들을
    내가 지켜드렸고, 멸망의 그 아들 이외는, 그들 중 아무도 잃어버리지 않았으니, 이는 성경기록이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나이다. (17:12)

    아버지께서 내게 주셨던 그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옵시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셨던 나의 영광을 그들도 바라보기를 내가 원하옵는 것은, 아버지께서 그 세상의 그 기초 이전에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옵니다. (17:24)


위 본절들에서 한 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보자. '그 아버지(하나님)이 그 아들(예수님)에게 그 사람들(잃은자들)을 주셨다'는 공통점을 지니며, <요한복음 17장>에 모두 7회 인용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용어는 바로 '그 사람들'을 '주시다' (Give)이다. '보내주시다'(Send) 용어가 사용되지 않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이 찾으신 '잃은자들'이요 '죄인들'이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그 제자들'도 포함된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주신 모든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신다. 그렇다면 과연 '그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러므로 너희 야콥의 아들들은 소멸되지 않느니라. (말라키 3:6, KJV화중광야역)

    Therefore ye sons of Jacob are not consumed. (Malachi 3:6, KJV)


하나님이 '변질된 십일조' 의식을 접으시면서(말라키 1:6-14),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민수기 23:19) '야콥의 아들들은 소멸되지 않으리라'(말라키 3:6) 약속하셨다. 야콥의 아들들은 구약시대를 대변하는 '이스라엘 민족'(육적인 씨)이요,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영적인 씨)로 등장하게 된다:

    이 열둘을 보내셨고, 그들에게 당부하시기를, '그 이방인들의 그 길 안으로도 가지 말고, 그 사마리아인들의 어느 성읍 안으로도 너희는 들어가지 말라. 다만 (너희는) 이스라엘의 그 집의 그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가거라. (마태복음 10:5-6, KJV화중광야역)

    These twelve Jesus sent forth, and commanded them, saying, Go not into the way of the Gentiles, and into any city of the Samaritans enter ye not:
     But go rather to the lost sheep of the house of Israel. (Matthew 10:5-6, KJV)


위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전도사역 중에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그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다. 전도의 대상을 지목해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전도사역 '피날레'를 장식하는 '참다운 십일조의 진실'은 <요한복음 17장>에 관한 별도주제풀이에서도 상세하게 밝혀질 것이다. 샬롬.

<Created/20091119> <Updated/20091119><200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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