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성경의 두 뿌리]

<네델란드어성경 영어번역풀이> (1657)

'도르트공회'의 위임받고 '데오도레 하아크'가 12년간 영어로 번역!!


글/ 정재선 목회자


[기도부탁드립니다!!] 마침 네델란드 어느 신학원에서 본 성경 리프린트판을 판매하네요. 구매 방법을 부탁했습니다. 기도부탁드립니다. (2010.2.16 Updated)

Greetings. I want to acquire your product:
STATENBIJBEL Facs. (Editie Theodore Haak.) Well, would you paraphrase the correct meaning in English, 'STATENBIJBEL'? Waiting for your answer. Thanks. In His Lovingkindess.


◆[미니풀이] <창세기 1장 영어번역풀이> The Dutch Annotations Upon the Whole Bible, London: Henry Hills, 1657, pp.10-11. 왼쪽/ 창세기의 개요(The Argument Of The Book). 오른쪽/창세기 1장 영어번역풀이. <이미지/화중광야 제공>.

영어의 권위역이 <킹제임스성경 1611>(KING JAMES BIBLE 1611)이면, 네델란드어의 권위역은 <쉬타텐비이벨>(STATENBIJBEL 1637)이다. 네델란드어를 모르는 영어권 사람들을 위해 <쉬타텐비이벨>을 디오도레 하아크(THEODORE HAAK)가 1645년에 번역에 착수하였고, 1657년에 발행하였다:

공식제목 <네델란드어성경전서 영어번역풀이 ㅡ The Dutch Annotations Upon The Whole Bible>

부제가 길다!! <Or, All the Holy Canonical Scripture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Together With, and According to Their Own Translation of All the Text: as Both the One and the Other Were Ordered and Appointed by the Synod of Dort, 1618 and Published by Authority, 1637. Now Faithfully Communicated to the Use of Great Britain, in English. Whereunto is Prefixed an Exact Narrative Touching the Whole Work, and this Translation.>

별칭 제목 <도르트 풀이성경 ㅡ The Dort Study Bible>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성경 만큼 중요한 책은 존재하지 않으니, 이는 성경이 하나님에 의해서 밝혀진 '그 진리' (THE TRUTH) 곧 '하나님의 그 말씀'(THE WORD OF GOD)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기간 중에 가장 논란이 되었던 주제 중 그 하나가 바로 '성경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카톨릭교회는 서민들이 성경을 읽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제들이 라틴어성경을 봉독하고, 성직자가 해석하는 것을 들어야만 했다. 사제들이 하나님과 신자들 사이에 중개자들로서 행동하였다.

한편, 프로테스탄트(개신교인들)은 자신들이 '신실하다'(FAITHFUL) 믿었기에 성경을 읽을 수 있고, 설교자는 하나님의 그 말씀의 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성경을 읽고 성경기록을 주해함으로써 하나님의 그 말씀을 회중에게 전하도록 하는 것이 설교자들의 사명이었다. 그러기에 신자들에게는 가능한 신뢰성을 지닌 자국어로 번역된 성경이 절실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독일의 마틴 루터는 1535년을 기점으로 오리지널 사본으로부터 독일어로 번역하여 <독일어성경>을 발행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6세기에는 루터의 독일어 역본을 번역한 많은 네델란드어 역본이 발행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 수록 네델란드의 개혁교회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기록된 오리지널 필사본들을 저본으로 하는 하나의 새로운 번역성경을 갈망하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1618년에 도르트레흐트(Dordrecht)에 기반을 둔 네델란드 개혁교회의 공회가 영어의 '권위역'(킹제임스성경 1611) 같은 네델란드어 권위역 번역을 위임하기에 이른다. '네델란드 의회'(The States General)에게 모든 번역 비용을 후원해주도록 요청하였다.

그 후 8년이 지난 1626년에서 의회가 허락하였기에, 번역가들은 번역에 착수할 수 있었다. 9년이 지난 1635년에 성경번역이 완료되었으며, 1637년에 최초로 네델란드어 권위역인 네델란드어성경 <쉬타텐비이벨>(STATENVERTALING/STAENBIJBEL)이 발행되었고, 1657년까지 50만부가 반포되었다.

본 성경은 300년이 넘도록 네델란드 개혁교회에서 가장 주요한 성경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일부 교회 공동체에서는 이 성경을 사용하고 있다. 2007년부터는 개정역 작업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오늘날에는 본 성경을 읽고 설교하는 사례들이 확대됨으로써 네델란드의 언어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1967년 6월 10일자로 발행된 'Grand Rapids Press'에 이러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 기사에 의하면, '안겔리네 하닝크' 여사가 <1637 Dutch Staten Bible> 한 권을 '헤크만도서관'(Hekman Library)에 기증하였다는 내용이었다. 담당 기자는 본 성경이 '칼로 찔리는 모독을 당하여 거의 망가져 있다. 그 칼 자국이...지금도 뚜렷하다.' 본 기사는 '일부 병사가 그 회중에 놀랐고, 그 성경을 못쓰게 만들려 했다.'고 밝혔다. 17세기 네델란드개혁교회 예배시간에 병사들이 성경들을 검으로 난도질했다는 것이다!!.

이 성경의 규격은 대형판으로 <1637 Dutch Staten Bible>이다. 이 번역성경은 영어권의 <킹제임스성경 1611>과 독일에서의 <루터성경>에 상당하는 '네델란드 개혁교회'(Dutch Reformed Church)의 <표준성경>이 되었다. 18세기에 발행된 '네델란드 동인도회사'(Dutch East India Company) 제본판도 있다.

1618년에 최초 교단 가운데 하나인 '네델란드 도르트레흐트 개혁공회'(Dutch Reformed Synod of Dordrecht)가 오리지널 언어로 된 성경을 네델란드어로 번역하는 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이 번역사역에 다음과 같이 6명의 네델란드 신학자들이 임명되었다:

1. 구약번역팀=요한네스 보게르만 (Johannes Bogerman /1576-1637), 빌렘 바우다르티우스 (Willem Baudartius /1565-1640), 게르손 부체르 (Gerson Bucer /c.1565-1631).

2. 신약번역팀=야콥 로란드 (Jacob Roland /1562-1632), 훼스투스 홈미우스 (Festus Hommius/1576-1642), 안토니우스 발라에우스 (Antonius Walaeus /1573-1639).

◆요한네스 보게르만
(구약번역)

◆빌렘 바우다르티우스
(구약번역)

◆훼스투스 홈미우스
(신약번역)

◆안토니우스 발라에우스(신약번역)


본 번역작업에는 '외경'(Apocryphal Books)도 포함시킨다. 번역은 '네델란드의회'가, 발행은 '네델란드 동인도회사'가 각각 후원하였다. 초판의 발행년도가 1636년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인쇄는 1637년에 완료되었다. 그리하여 1637년 9월 17일에 본 성경의 첫 번째 발행 본이 발행을 후원해준 '네델란드 동인도회사'(Dutch Estates General)에 기증되었다.

◆<쉬타텐비이벨>(STAENBIJBEL) 속표지.
<자세히보기>.


<쉬타텐비이벨>(STAENBIJBEL/STATEN BIBLE)은 광범위한 '본문풀이'(annotations)와 '상호 참조'(cross-references)를 수록하고 있다. '도르트공회'(Synod of Dordt)가 번역자들에게 많은 번역지침들을 내렸던 것이다. 성경 각권 마다 그리고 장(章) 마다 간략하고 명확한 요약을 수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일 히브리어와 헬라어 중에서 '문자적으로'(literally) 완전히 번역이 불가능할 경우, '여백주'(marginal explanations)를 이용하여 설명토록 하는 것이었다. 본문풀이(annotations)는 성경해석의 역사에 중요한 것이요, 네델란드 개혁의 전통 속에서 성경 독자들의 세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것이 1951년까지 근본적인 네델란드 성경번역이었고, 네델란드어에 상당한 언어학적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네델란드어성경 온라인이 있으며 <온라인성경읽기>, 여기에는 본문풀이는 물론, 번역자들에 관한 정보와 네델란드어성경에 관한 것들이 수록되어 있다.

 

[네델란드어성경 원본ㅡStatenbijbel/ Staten Bible] 1637년에 발행된 <쉬타텐비이벨>이 20년만에 1657년에 영어역본으로 발행되었다. <자세히보기>

 

[영역본ㅡThe Dutch Annotations Upon the Whole Bible]1657년에 발행된<네델란드어성경 영어번역풀이>.
<화중광야소장>


한편, 네델란드어를 읽지 못하는 자들을 위하여, 본 성경의 영역본이 발행되었다.

1645년에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총회'(Westminster Assembly)가 본
<쉬타텐비이벨>(Statenbijbel/ Staten Bible)에 관하여 데오도레 하아크(Theodore Haak/ 1605-1690)를 설득시켜 '영어번역풀이'  (Annotations)에 착수토록 하였다.

◆영국교회 '웨스트민스터총회'의 신앙고백서 제1장 '성경기록에 관하여' ㅡ 성경기록 및 하나님이 기록하신 그 말씀으로, 신구약 성경은 다음의 책들이 포홤된다. (외경이 제외됨). <Westminster Assembly (1643-1652), The Humble Advice Of The Assembly Of Divines, Edinburgh: E. TylerㅡPrinter To The King) 1647, p.2>


16세기 이후로, 네델란드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개혁에 도움이 되었다. 게르만족의 저지대(Germanic Lowlands) 내에서의 종교개혁의 초기 노력은 네델란드 교회들의 신앙고백 전개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개혁주의 교회들의 초기 교리 기준 중에서 일부는 '벨직 신앙고백서'(the Belgic Confession/1561)와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the Heidelberg Catechism/1563)이었다. '도르트공회'(Synod of Dort/1618–1619)에서, 네델란드교회들은 이같은 종전의 기준들을 재확인하였고, 그 유명한 '도르트 신조'(Canons of Dort/Canons of Dordrecht)을 첨가시켜서, 네델란드 개혁파 회중들의 '3대 개혁주의 일치'(Three Forms of Unity)를 주도해 나갔다. 그 유명한 '도르트공회'는 교단과 예배형식도 개발하였다. 그리고 성경을 국가차원에서 네델란드어로 번역할 것을 위임하였다. 이렇게 네델란드교회는 공식으로 종교개혁주의를 받아들였고, 그 영향들이 오늘날까지도 미치고 있다. <자세히보기>.

 
 

◆'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도르트 신조'


위 세 가지 문서를 정리해서 발행한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Abraham Kuyper, De Drie Formulieren van Eenigheid: met de kerkorde, gelijk die voor de Gereformeerde Kerken dezer landen zijn vastgesteld in haar laatsgehouden Nationale Synode, Amsterdam: J. H. Kruyt , 1883>는 한국 장로교파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현대 교회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칼빈주의 지도자이다!! 자유주의 물결이 온 유럽을 휩쓸고 지나갈 때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카이퍼(1837-1920)는 신학자, 정치가, 목회자, 그리고 사상가로서 현대 교회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카이퍼에 의하면, 루터는 칭의에서 출발하였으나, 칼빈은 이보다 훨씬 넓은 범위 즉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우주론적 원리에서 출발했다. 네델란드의 종교개혁의 근원이 어디인가? 그 종교개혁의 근원인 독일의 루터를 '찬밥'으로 다루는 아주 철저한 철저한 칼빈주의자이다.

마침내 하아크의 '영어번역풀이'(ANNOTATIONS) 성경은 <Dutch Annotations Upon the whole Bible Or, All the Holy Canonical Scripture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Together With, and According to Their Own Translation of All the Text: as Both the One and the Other Were Ordered and Appointed by the Synod of Dort, 1618 and Published by Authority, 1637. NowFaithfully Communicated to the Use of Great Britain, in English. Whereunto is Prefixed an Exact Narrative Touching the Whole Work, and this Translation>이라는 타이틀로 1657년에 발행되었다.

제목이 유난히 길다!! 그는 '상호 참조'(cross-references)와 '외경'(Apocrypha) 번역은 제외시켰다.

데오도레 하아크의 '영어번역풀이'(ANNOTATIONS) 성경 <The Dutch Annotations Upon the Whole Bible>의 속표지. <화중광야소장>


데오도레 하아크는 1605년 노이하우젠(Neuhausen)에서 태어나 1690년 런던에서 죽은 독일 출신의 칼빈주의 학자였다. 그는 20세 때 영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옥스퍼드, 캠브리지와 라이덴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자세히보기>.

하아크는 코메니우스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적어도' 1638년 이후로, 하아크는 '코메니우스그룹'(Comenian Group)의 회원이었다. 그는 이 그룹을 대신해서 Mersenne와 함께 과학적인 주제들을 교환하였다. 1640년 대 후반에 그는 '그레샴그룹'(Gresham Group)의 통신(서신) 담당자로서 활동하였다. 1643-44년 사이, 하아크는 덴마크 의회특사로 파견되었다. 하아크는 영국의 공화정치(Commonwealth)와 보호정치(Protectorate)에서 서신담당자와 번역가로서 봉직하였다.' <Christopher Hill, Intellectual Origins Of The English Revolution Revisited,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p.95>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 유럽의 세계관은 이전 세계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새로운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 주축이 되는 것이 과학기술의 발달인데, 인간의 힘으로 이룩해 낸 이 신비로운 작업 덕분에 세계는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진리의 탐구에 있어서도 과학적인 방법을 도입해서 자연의 원리에 따라 실증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간의 능력과 이성을 통해 성립된 객관적 가치를 보다 신뢰하게 되었다. 변혁의 시대를 풍미하고, 근대사회의 발판을 마련한 실학주의의 교육을 정리하고, 루소, 페스탈로치, 프뢰벨 등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코메니우스!!

체코의 교육개혁가인 동시에 종교지도자이다. 그는 주로 교수법을 통해 기억되고 있다. 그는 사람들 사이의 평화와 협력을 강조했으며 이것들은 보편교육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1592년 3월28일 동부 모라비아에서 보헤미안 동포교단에 속한 부유하고 독실한 기독교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2세때 양친을 잃었으며 16세 때 라틴학교에서 10세나 아래인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였다. 20세때 목사가 되기 위해 헤르본 대학에 들어가서 알슈테드교수로부터 라트케의 사상을 소개받았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는 베이컨의 영향을 받았다. 1616년 성직자가 된 그는 1618년 <30년 전쟁>이 일어나고 보헤미아를 카톨릭으로 개종시키려 하자 외국으로 망명생활을 떠나게 된다.
[Reformation Online 24] 독일을 무슬림 국가화로부터 구해낸 폴란드 왕 얀 3세/ 자세히보기].

1622년 아내와 두 아이가 병으로 죽고, 1628년 폴란드의 레슈노에 정착하여 성직자로서 교사로서 그리고 저술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그는 교육을 통해 사회개혁을 열망하였다. 1641년 영국인 하틀리브(Hartlib)의 초청으로 영국에 간 그는 '빛의 길'을 저술하여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하였으나, 청교도혁명에 의해 무산되고 만다. 1642년 스웨덴 정부의 초청으로 스웨덴의 교육개혁 운동에 참여한 후 폴란드로 돌아갔다. 그는 1648년 모라비아 교단의 주교가 되어 1650년 헝가리의 젊은 왕자 지그문트의 도움으로 학교를 세우고, 유명한 '세계도회'를 집필하여 1658년에 발표하였다. 이 책은 아동의 감각을 발달시키고 라틴어를 쉽게 배우도록 할 목적으로 저술되었으며 2세기 동안 학교 교재로 사용되었다. 그는 말년에 암스테르담에 가서 여생을 보냈으며, 1670년 11월15일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코메니우스는 1641년 9월 영국의회의 초청에 따라 영국에 갔다. 그는 영국의회의 종교문제에 관한 정치적 의견의 진술을 요구받았으나, 한 사람의 학교교사 내지 학도로서 자기입장을 한정시키고, 크게 움직이지 않다가 1642년 스웨덴 정부의 원조를 얻기 위해서 스톡홀름으로 떠났다. 영국 체류 1년 동안에 그는 '재래세계'(在來世界)의 타락을 구제하려고 시도하던, 철학, 입법,종교운동 등의 무능을 지적하고, 그 원인을 깊이 생각한 후에, 진실되고 유효한 구제의 길은 보편적인 빛'이라고 주장하는 '빛의 길'(Via Lucis) 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코메니우스의 저서 '빛의 길'(Via Lucis) 표지. 한글번역서 <자세히보기>

    '모든 인간은 모든 종류의 행동에 필수적인 앎, 의지, 성취라는 세 가지 종류의 본유적인 원리를 똑같이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일반개념이라 불리는 본유적인 지식규범(Norms of knowledge)과 일반본능이라 불리는 욕망의 자극(Stimuli of Desire), 일반능력이라 불러도 무방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기관들(organs)이 있다...(중략)...우리는 앎, 의지, 행동이 모든 국가, 모든 나이, 모든 조건에서 인간본성의 질서에 따라 같은 방식으로 제시될 것으로 믿는다.' (Comenius, 1938 :6-8).

    '부자의 집이든 빈자의 집이든 사람이 발견될 수 있는 곳 어디에나 들어가 보면 당신은 사람들이 가르침과 배움에 전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우연히 이러한 가르침과 배움에 전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것을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알고 싶어하고, 알고 싶은 것을 탐구하려하고, 그가 학습한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하고, 심지어는 설득에 성공하여 다른 사람을 이끌려 하고, 누군가 자신이 알고 믿고 생각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그것을 강요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다.' (Comenius, 1938 : 2). http://kier.korea.ac.kr/kierkorea/down/20040901.pdf

    필자의 특별칼럼 '국치 100주년'의 타이틀도 이와 같은 격동과 혼란의 흐름 속에서 지난 날의 왜곡된 역사를 바르게 깨달아 다가올 국란을 대비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는 구국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1부>는 이미 완료되었으며, <제2부>는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집필할 것이다. <정재선의 호국스페셜 ㅡ 저녁 무렵에 빛이 있게 되리라/ 자세히보기>


코메니우스는 '빛의 길'에서 세계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으며, 하나님이 임하시는 그 날에는 빛이 있을 것이라는 구약성경 <스카랴 14:7>을 인용한다:

    14:7But it shall be one day which shall be known to the LORD, not day, nor night: but it shall come to pass, that at evening time it shall be light. <Zechariah 14:7, KJV)

    14:7그러나 주님에게 알려질 한 날이 있을 것이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니, 저녁 무렵에 빛이 있게 되는 그 때가 임하리라. <스카랴 14:7, KJV화중광야역>


코메니우스는 '그리스도의 그 왕국'(THE KINGDOM OF CHRIST)이 수립되고, 온 세계가 빛으로 가득차게 될 그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니, 우리는 모두 보잘 것 없는 도움이라도 하나님께 드려서 그 최고의 빛이 우리 모두에게 더 빨리 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는 17세기의 신앙을 주도하였던 '천년왕국주의'가 급진적인 개혁을 촉진시켰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춘희, 코메니우스(1592-1670)와 청교도의 관계에 대한 일 고찰, '신학과 선교,' 창간호, 서울: 아세아연합신학대학, 1997, p.259-293 참조>.

아울러 코메니우스의 새로운 과학과 자연의 탐구 역시 하나님의 그 왕국을 추구하는 필연적인 일이었으며, 그의 사상의 결정(結晶)이라고 할 수 있는 '범지학'(汎智學)을 펼친 것이 그의 '빛의 길'이었으며, 이러한 코메니우스의 영향을 받은 하아크의 네델라드어성경의 권위역인 <쉬타텐비이벨>을 영어로 번역한 것은 칼빈주의 학자인 하아크의 영향이 과소평가될 수 없을 것이니, 이제라도 그가 번역한 '영어번역풀이'  (ANNOTATIONS) 성경 <The Dutch Annotations Upon the Whole Bible>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발행되는 그 날이 오기만을 조용히 기도한다. 겉으로 요란스럽게 칼빈주의만 붙들 것이 아니니라...


'주님, 하아크의 번역성경을 입수토록 도와주소서!!'



<Created/20100210> <Updated/20100212><201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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