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리바이블] 8년간의 침묵을 깨면서...새로운 도약의 길을 향하여...화중광야는 출발합니다!!

New Departure For WhaJoongKwangYa

◆[BGM] [런타임/05:43] <곡목/광야의꽃(화중광야 주제곡) ㅡ 편곡연주/정동윤> 2년만의 연주입니다. 즐감하세요. 8년의 길고도 긴 침묵으로부터...2014년에는 새로운 앨범으로 여러분을 찾아 가겠습니다...그리고 위 악기 입수에 도움을 주신 <그 손길>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샬롬!! <2013.11.23/깊은밤/화중광야 가족일동>

이 곡의 타이틀인 『화중광야』(花中曠野)는, 아빠가 영어성경인 <킹제임스성경>을 번역중이시던 1999년 7월, 우리들이 아빠에게 보낸 생일 축전의 글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빠, 광야 안에서도 피는 꽃이 있어요. 우리 모두 힘내요. 생일 축하해요!"

밖에는 7월의 비가 주루룩 내리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시편 119편> 번역을 마치신 아빠께서 크게 감동을 받으셨던 터였는데, 그 감동이 우리가 띄워보낸 생일 축전 내용과 합치됨으로 해서 즉석에서 시로 옮기시게 되었다:

1. 은은히 귓가에 들리는 저 소리/ 줄줄이 흐르는 이 눈물은/ 광야 안에서 내리는 저 빗소리

2. 세상은 나를 무심히 버렸고/ 내 삶은 갈기갈기 찢긴 조각이련만/ 광야 안에서 피어나는 저 꽃

3. 생생히 귓가에 들리는 이 소리/ 살포시 미소짓는 이 얼굴은/ 광야 안에서 피는 꽃이리니
<후렴> 내 혼이 진토인들 살리시는 당신/ 광야 안에서도 피는 꽃은/ 주 당신께 사랑받는 생명이나이다

나는 아빠의 답신인 그 시 『광야 안에서도 피는 그 꽃』을 중심으로 하여 곡을 지었으며, 그 곡을 이름하여 후에『화중광야』(花中曠野)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다. "광야 안에서도 피는 그 꽃"을 한국 한자식으로 옮긴 것이다. 중국 한자식으로 표현하면,『曠野之中的花』이다. 그리고 나서 2개월 뒤 10월, 나는 군에 입대하였다.

[아빠가 보내주신 편지를 읽고서...그리고 나는 그리고 아무 말이 없었다.]

<2001년 7월 21일 토요일- 어제 오전에 내내 장마비가 쏟아졌다. 오후 3시경 넘어서는 구름이 개이더니, 6시경에는 아주 햇빛이 제 얼굴을 나타낸다. 이 무렵 옥상으로부터 매미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한참을 듣는 동안에도 좀처럼 그치질 아니한다. '어디서 우는가' 하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물 내려가는 곳 모퉁이 스틸로플 상자 위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순간만은 동심으로 돌아갔다. 온양 시골에서 살 때, 학교 끝나면 잠자리 빗자루 만들어서 둠벙(연못/지금은 흙으로 메어졌음)으로 나가서, 말잠자리 잡으려고 어른 물길이 넘는 곳으 로 들어갔던 일, 교정 포풀러나무와 미루나무 위에서 울고 있는 쓰르래미(매미의 일종)를 잡으러 나무에 올라 갔던 일, 저녁이면 할아버지하고 원두막에 가서 밤새 지키면서(들짐승이 많았기 때문에), 옛 이야기를 듣던 일들이 주마등 처럼 지나간다. 이것이 여름의 풍경중 하나였다.

나 자신도 모르게 옥상의 매미를 잡았다. 내 손 안에서 요란하게 울어댄다. 방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그랬더니, 애견 히동(HE棟)이가 야단났다. 왠 일인가 싶은 모양이었다. 투명 박스 안에 넣어 두었더니, 히동이가 이리 저리 살피면서 매미에게 달려 든다. 아무리 발로 헤쳐 본들 그 박스가 열릴리 만무하다. 다시 꺼내서 손에 쥐고 있었더니, 공격하느라 야단이다. 제 깐에는 이방인의 침입이었기 때문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다음에 두 손가락으로 쥐었더니, 어느 새 야성을 발휘한 히동이가 아빠의 손에서 그 매미를 빼앗아 삼키려는 것이었다.

    '히동아, 그건 안돼. 먹는게 아니야. 얼른 뱉어. 살려줘야 하는 거야.'

이렇게 순간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히동이는 매미를 방바닥에 뱉어 내동댕이 친다. 패그르르 쳐져버린 매미는 날지를 못한다. 놀래도 보통 놀란 것 같지 않다. 나는 불쌍한 그 매미를 방문 입구 화초에다 올려 놓았다. 그 매미는 화초 가닥에 매달려 있을 뿐, 지금은 울지 않고 있다. 한편, 히동이는 방바닥에 배를 쭉 깔고 누워서 그 화초 쪽 만을 바라보고 있다.

    '또 한번 시끄럽게 울기만 해 봐라. 내 가만 두나...'

글쎄, 승산은 아직 나지 않았다. 아마 오늘이 지나봐야 알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매미는 7월 22일, 오늘 아침 죽었다. 아마 누구 한테 밟힌 것 같았다. 화초에서 떨어져 있는 것을...늦게 일어나보니, 방문 앞 바닥 위에 죽어 있었다. 그것을 히동이가 알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매미가 불쌍하였다. 차라리 잡지 말고 내버려 둘 것을...자책감이 든다. 이렇게 여린 곤충에게 까지도...>

아빠가 보내주신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하찮은 곤충의 죽음에도 이러한데, 하물며 이 세상에서 그토록 아껴주고 사랑하던 파트너가 자기 곁을 떠났을 때의 슬픔과 고통과 애처롬은, 그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너희 입 밖에는 어떠한 더러운 말도 내지 말고, 오직 궁핍한 자에게 필요한 선한 말만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에베소서 4:29, 킹제임스 정재선역).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을 잡지 말고, 보이지 않지만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신'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라 하신다. 그러다 보면 현세에서 자기 집착이 드러나는 아집이 사라지고, 원망과 미움과 시기와 질투 대신에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아끼게 되는 마음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오직 우리의 입 밖으로는 선한 말만 하여 은혜를 끼치게 하라는 말씀이다.

처음에는 나 자신의 방벽에만 싸여서 밖을 내다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화중광야』(花中曠野)가 어떻게 쓰여졌고, 그 곡이 어떻게 지어진 것인데...? 그래서 내가 제대하면 가창력이 좋은 보컬을 발굴해서, 한번 멋지게 하나님께 찬양의 예물로 드려지는 예배가 되도록 하자고, 입대하기 전에 아빠와 굳게 약속했던 것인데...제대 반년 남겨 놓고는, 군대의 특수성 때문에 아쉬움이 온통 내 마음을 휘감아 버리니, 나는 도저히 내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자신이 몸부림치고 있는데, 아빠는 다음의 말씀을 편지 속에 담아 보내주셨다:

    '또한 하나님의 화평이 너희 마음들 속에서 다스리게 하라. 너희가 그 화평에 이르도록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너희는 감사하는 자들이 되라. 그리스도의 그 말씀이 너희 안에 풍성히 살게 하여 모든 은혜로서 성시들과 찬송가들과 영적인 노래들을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며, 너희의 마음들 속에서 은혜로 주님께 노래하고, 또 너희가 말에나 행위에 있어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님의 그 이름으로 행하고, 그 분을 통하여 하나님 그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 (골로새서 3:15-17, 킹제임스 정재선역).


이 말씀을 받는 순간, 나는 나의 아집과 허물을 절감하게 되었고, 상대방을 용서하게 되었고, 마음 속에 품었던 독소가 사라져 버렸고, 오직 주님의 그 말씀과 진리를 전함에, 나의 마음 속에 화평과 은혜가 없이는,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는 나의 위선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 같아서, 나는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솔직히 표현해서 상대방을 미워하는 나 자신이 무척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지난 6월 6일 일산에 있는 그 스튜디오에서, 내가 작곡자로서 한번 자신의 곡을 연주해 보겠다고 한 것이 처절하게 거절, 아니 이것은 예수를 믿는그리스도인 여부를 떠나서, 가장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레벨에서 거절당하는 수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비난을 하였던 것이다. 밖으로 표출되었더라면 한 바탕 해프닝이 벌어졌을 것인데, 내 속의 영께서 붙들어주신 '그 속사람'(화중광야 홈페이지 칼럼 「날마다 생명수」- 박준형의 간증: 사람의 본체 속사람의 새창조 참조)에게 감사치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은 아무리 내가 계획을 잘 세웠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오직 주님 뿐임을(잠언 16:3,9)...그래서 그 분 앞에서는 용서와 관용을 찾게 되었고,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할렐루야!!!

그리고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화중광야』(花中曠野)가 속히 테이프로 나와서 '이 얼어붙어 있는 전선 광야 안에서도『그 꽃』이 살아 있듯이, '티끌에 붙어 죽어가는 혼을 말씀을 따라 살리시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기만을 간구할 뿐이다.' (시편 119:25,37,40,88, 107,149, 154,156,159 참조).

이제『정동윤의 화중광야 스토리』를 마무리하면서 실감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토록 부족한 나 정동윤을 군대 복음화의 한 도구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은혜의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고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를 최전선 '광야' 안으로 불러주셨음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내가 하급자 시절 그토록 천식으로 육체의 가시를 받았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이다. 즉 일병부터 상병 초기까지는 밖에 계신 아빠도 무척 힘드셨고, 부자간의 대화가 거의 단절된 기간이었다. 상급자들이 그런 상태의 '증세'이면 얼마든지 의가사 제대를 할 수 있다고 부추기는 그 유혹에 빠진 것이다. 이 때 나는 아빠에게 많은 불만을 가졌었지만, 오직 그 완악해진 나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분은 주님 뿐임을 깨달았고, 주님께만 기도하면서 의지하였다.

◆아빠의 작품(2002년 12월)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리고 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1999년 7월, 아빠에게 띄워 보낸 그 생일 축전을 통하여, 이토록 하나님의 그 왕국 확장을 위해 불러주셨고, 그 분의 복음 전도의 한 도구로 쓰임받고 있는 그 은혜에 나는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미움이 사랑으로, 울음이 웃음을 낳았으니, 죽기까지 주님을 따라가리라!!! 샬롬.

<2001년 가을 최전선 청산골 '광야' 안에서 정동윤 쓰다>

<Created/20131123> <Updated/201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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