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곡 '桓鬱歌'(한울가) ㅡ 작시작곡/정재선 - 편곡연주/정동윤>


'명진 스님='이단이 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단'은 관습·전통에 대한 배반입니다. 고정관념, 불교에서 말하는 '업'의 안경을 벗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일입니다. 지금 갖고 있는 나의 삶의 편안함과 익숙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구도이고 수행입니다. 벗어나고 나서도 벗어났다는 그 틀에 매여 있으면 안 됩니다. 영구혁명처럼 끝없는 이단을 향해 도전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신을 볼 수 있고, 그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선과 악을 모두 버리라는 '불사선불사악'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왜 선도 버려야 하는가. 쇠사슬에 꽁꽁 묶인 것이 악이라면, 부드러운 명주실로 묶인 것이 선이라는 겁니다. 좋은 관념이든 나쁜 관념이든 완전히 벗어던지는, 해탈인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끊임없는 부정만이 참긍정, 대긍정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명진스님/'지금 한국사회가 편안하고 건강합니까? 도덕적입니까?'/자세히보기>.

[野風 - 들새바람] [종교(宗敎)는 싸움이요 진리(眞理)는 화합이라]

이곳도 날씨가 이상하였다. 한 겨울인데도 한 겨울답지 않게 날씨가 이상해졌다. 살갗에 닿는 차거운 느낌이 마치 작은 침으로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날이 밝았기에 야급(野給)은 라반(羅盤) 외삼촌 댁으로 서둘러야만 했다. 짐보따리를 둘러 맨 야급(野給)은 고려정사(法華精寺)의 권속들과 아쉬운 헤어짐을 나누어야 했다.

'허허~ 이제 떠나실려구요??

'덕장 법사님과 권속님들의 후하신 보살핌을 받고 떠납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어서요...'

'외삼촌 댁에 가셨다가 다시 돌아오실 때도 저희를 스치지 마시고 꼬옥 들려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녜, 명심하겠습니다, 덕장 법사님.'

'참, 외삼촌 댁이 간도 어디신가요?

'명동촌(明東村)이라 합니다.'

'명동촌'이요...허~거긴 왜구(倭寇)들이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곳인데요...왜구들은 태양여신 '아마테라수 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섬기는 족속인지라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나이다...이는 화합(和合)을 파지(把持)하는 진리(眞理)가 아니요, 오직 싸움과 투쟁만을 추구하는 인본적인 종교(宗敎)의 극치이기에 말입니다...왜구들이 이 태양여신의 종교적인 미혹에 빠져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명을 살육할런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겁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기에...심히 좌불안석입니다.'

'녜, 잘 알고 명심하겠습니다...저 왜구들의 탐욕과 전쟁은 기필코 막아낼 겁니다. 우리 '대한국 독립군'(大桓國獨立軍)이 말입니다. 외삼촌께선 저 왜구들이 벌벌떠는 바로 대한국 독립군이시거든요...'

'허!!...대한국 독립군이라 하셨습니까?'

'녜, 독립군 대장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왜구들과 싸우고 계실 겁니다.'

'허! 아주 훌륭하신 애국자 집안이시군요...'

'그래서 제가 뭐 큰 도움이 되어 드려야 할턴데...요...'

'혹시 독립군 대장 외삼촌의 이름이...'

'집에서는 라반(羅盤)이라 하옵고...독립군 부대에서는 '라일성'(羅一成) 장군이라 부르신다고 저의 어머니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라일성 장군이라...아, 그분이세요...!! 저희는 그분을 뵙진 못하였으나, 왜구들이 벌벌 떠는 장군이라 들었지요. 백전필승(百戰必勝)하시는 대단하신 명장이라고 이곳에서도 소문이 파다하답니다. 그러니 가시는 길 무척 조심해야겠소이다. 만약에 왜구들에게 붙잡히면 목숨이 위태하니까요.'

'잘 알았습니다. 그럼, 모두들 안녕히 계십시요...'

'나무묘법연화경...'

야급(野給)은 법화정사를 떠나갔다. 며칠 쉰 후에서인지 간도를 향하는 야급(野給)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고향을 떠나 온지도...]


'간도로 가자. 간도에 가면 땅도 많고 들도 넓다고 하더라. 리브가(里副佳) 어머니께서 일러 주셨다. 왜구들이 욱실거린다고는 하지만, 그 놈들도 사람들일턴데...나 같은 가련한 사람을 죽이기야 하겠는가. 하늘이 무녀져 내린다 해도 솟아날 길은 있으리라 하였는데...기름진 땅이 그리 많다는 명동촌(明東村)에 가면 꼭 살길이 있을거다. 라반(羅盤) 외삼촌과 형제들이 반가이 맞아 줄 것이니까....'

매서운 간도 벌판의 한풍(寒風)이 볼가를 스칠때마다 야급(野給)은 더욱 마음을 굳게 다짐하였다. 문득 문득 어머니 리브가(里副佳)에 대한 그리움이 자신의 온몸에 전율을 내리 쳐 올 때마다, 야급(野給)은 두 손을 불끈 쥐고는 다시 다짐해본다.

'어머니, 제가 반드시성공해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애서(哀序) 형님의 오해를 풀어드리고, 반드시 화해를 이루겠습니다. 어머니, 제가 고향을 떠나 온지도 벌써 한달이 지나갑니다. 이제 라반(羅盤) 외삼촌댁이 그리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부디 부디 옥체 보존하시옵소서...'

가파른 고개를 넘고 넘길...어느 덧 해는 산 뒤로 숨고 있었다. 저 앞에 고즈넉스런 마을이 한 눈에 들어 온다. 한 겨울이라 저 너른 들녁은 텅 빈 가슴처럼 봄의 농부들의 길손을 기다리고 있다는 첫 느낌이 들었다. 야급(野給)이 마을 어귀에 다달으니...젊은 한 아가씨가 우물가에서 물을 깃고 있었다.

'음...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

'말씀하셔요.'

'여기가 간도 땅 명동촌(明東村) 입니까?'

'맞는데요...어떻게 오셨는지요...??'

'제대로 찾아 왔군요. 라반 씨댁을 찾아 왔는데요...'

'녜!!~ 바로 저희 아버지신데요...'

'그러면...'

'전, 그분의 둘째 딸입니다.

'아!! 그럼, 이름이...'

'저요...?? 라해(羅海)예요.'

'햐!!~ 라해가 이렇게 컸구먼...'

'어디시 오신 뉘신지...??'

'나 야급(野給)이야...'

'어머!!~ 그럼 저 한밭(太田) 리브가(里副佳) 고모님댁 둘째 야급(野給) 오라버니...'

'그래!! 맞아!!...바로 내가 야급(野給)이라구...'

'어이구머니나!! 이 춥고 머언 길을...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라해(羅海)가 머리 위에 물동이를 이었다. 그리고는 집으로 행하였다. 야급(野給)은 그 뒤를 따랐다.

'라반(羅盤) 외삼촌은 잘 계시지...??'

'녜, 잘 계셔요. 근데, 지금은 집에 안 계셔요. 부대에 계세요. 집에 오시려면 미리 기별이 오는데...여태껏 없는 걸 보니, 오늘 밤은 못내려 오시나봐요...

'오, 그래...그렇담, 내가 올라가 뵈면 되겠구먼...'

'그래도 되지만요...그건 힘들거에요...요즘 왜구들의 정탐이 무척 강화되어서요...그냥 평범한 이민 온 대한인(조선인) 농민처럼 살아가고 있어요...위장하지 않으면, 목숨이 부지하기 힘든 곳이여요...

음, 과연 듣던대로구먼...'

'뭐가요...'

'아니...난 중에 알려주지...'


<다음에 계속됩니다...>

[간도 땅에 뿌려진 그 복음의 그 씨앗이 발아되었도다!!]


[야풍후 ㅡ 野風候] 중국의 동북지역의 '조선족 백년사화'를 아시는가?? [1]

간도 자역에 사는 '대한민족'(大桓民族/대칸민족)은 비단 수난의 역사,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눈물겨운 이민, 정착의 역사, 개척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향이 싫어서 떠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겨레들은 오랜 옛날부터 이 간도 땅으로 건너와 살기 시작하였다.

대한국(조선=쥬신)과 중국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인접국가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중국에 이주하여 왔다. 그러나 이들은 대다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자기 민족의 특성을 잃고 말았다.

1644년 청국(淸國)의 군대들이 중국의 관내로 처들어 오면서 동북 경내의 여진족 부락들도 대부분이 군대를 따라 나가 버렸으니, 한동안 동북지역은 거의 비다싶이 되었다. 이윽고 1667년 청국은 백두산(장백산)과 입록강과 두만강 북쪽 천여리의 땅을 청조(淸朝) 발상지라 하면서 봉금(封禁)을 선포하고 이민족들의 천입(遷入)을 금지하였다. 이것이 역사상 '봉금령'(封禁令)이라 일컫는다. 이 봉금정책(封襟政策)을 실시하면서 '대한인'(조선인)의 천입(遷入)이 거의 중단되다 싶이 되었다.

당시의 대한국(조선)도 청국의 핍박에 의해 국경선에다 초소를 세웠고, 대한국인들이 강을 건너 중국으로 살러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리하여 대한인들의 중국 동북지역에로의 대거 이주는 이 봉금령이 해제된 이후부터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 이전부터...그 너른 동북지역 전역은 바로 우리 대한국(대칸국)의 영토였던 것이다. 이에 관한 올바른 역사관이 정립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것이다!!

그러다가 19세기 중엽부터 이 봉금이 조금 느슨하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1860년부터 수 년간 대한국(조선국) 북부지역에 연속해서 재해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인의 재민(災民)들이 살길을 찾아 동북땅으로 건너오기 시작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니, 당시 청국의 지방 관리들도 살기 위해 건너오는 대한국의 '기민'(飢民)들에 대해 어쩔 수 없다 판단하였고, 오히려 그들을 이용해서 동북지역의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도 무방하여, 1875년부터는 일부 지역에서는 봉금령이 해제되었고, 1885년에는 전지역에서 봉금령이 해제된 것이었다. 이 19세기 중엽부터 대한인(조선인)들의 중국 동북지역에로의 대량적인 이민이 시작되었고, 그리해서 흔히 말하는 중국 동북지역에서의 '대한족(조선족) 백년사화'라는 말은 이를 두고 지칭한 것이다.

그렇게 대한족의 역사가 흐르고 있는 동안, 1910년에 왜구(일본 제국주의)가 대한국을 강점한 뒤, 더 많은 우리 민족이 중국으로 건너 왔다. 왜구의 잔혹한 압박과 착취 아래 파산된 대한국 농민들이 살길을 찾아 이 땅에 왔으며, 또 수 많은 반왜구 애국지사들, 학생들, 양심있는 지식인들도 망국노(亡國奴)가 되지 않으려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왔다. 그 당시 통계에 의하면, 대한국인 20여만명이 국경을 천입(遷入)했을 것이라고 하니,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당시 동북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청국의 '봉계군벌'(奉系軍伐)은 위선적인 '초민개간정책'(招民開墾政策)을 실시하여, 파산당한 대한인(조선인) 농민들로 하여금 동북 땅에 들어와 황무지를 개간하게 한데서 이민열조는 계속 올라갔다. 왜구(일제)는 이를 '개척이민촌'(開拓移民村)이라 불렀다. '봉계군벌'이란 동북군 또는 동북변방군으로서 1920년대에 동북지역 만주에 주둔하던 중국 국민당정부의 지방군을 일컫는다.그리고 1920년대초부터 동북지역은 점차 중국인과 대한인(조선인)의 반왜구(反倭寇/反日) 무장투쟁의 중요한 장소로 되면서, 대한인의 반왜구 애국지사들이 계속 이곳을 찾아 왔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Created/20110810> <Updated/201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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