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풍(野風) 주제곡/'대칸민족이여, 일어나라!!' ㅡ 작시작곡/정재선 ㅡ 채보연주/안연숙>(룸바버전)


[호국불교의 진상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미스테리!!] <우선필독자료/우리말 팔만대장경/자세히보기>


한반도의 통일은 호국 및 구국의 전선에서 외침을 막아냈던 불국(佛國)으로서 <대칸민족>(大桓民族)의 조상들의 지혜와 명철을 거울삼아 정진해 나가야 가능하다!! 이러한 민족적 정기의 표출이 바로 불사로 이어졌으니,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 부른다.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킨다. 이 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걸쳐 간행되었다. 이것은 고려시대에 간행되었다고 해서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이라고도 하고,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해인사 안에 보관되어 있는 관계로 <해인사고려대장도감판>(海印寺高麗大藏都監板) 혹은 <해인사고려대장도감각판>(海印寺高麗大藏都監刻板)>이라고 함이 가장 정확한 명칭이다.

이것을 만들게 된 동기는 고려 현종 2년(1011년) 때 판각을 발원한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자,
(초조대장격 판각 발원지는 청주 '행궁'으로 밝혀지다) <법보신문/자세히보기>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이라고도 한다.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강화도(江華島) 안에 <대장도감>(大藏都監)을 두고, 영남의 진주 안에 <분사>(分司)를 설치하여 대장경을 새긴 것이다. 분사란 고려시대 특유의 기관명이었다. 기본 관아에 속해 있으면서 일정한 인원이나 기능을 분리해 따로 둔 분관청이었다. 그러니까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 또는 <분사도감>(分司都監)이란 이름의 관청이 존재했던 것이다. 여기서 대장경을 판각하는 일을 맡았다.

고려 고종은 1237년 몽고군이 침입하자, 이를 격퇴하기 위해 민족의 비원으로 대장경의 경판을 제작하기 시작여 군신이 함께 <기고문>(祈告文)을 남겼다:

    [번역문] '국왕은 삼가 태자, 공백후, 재추, 문무백료 등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끝없는 허공계 시방(十方)의 수없는 제불보살과 천제석을 위시하여 삼십상천의 일체 호법영관(護法靈官)에게 기도로써 고합니다. 옛적 현종 2년(1011년)에 거란주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오자 현종은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는데, 거란병은 오히려 송악성(개경)에 머물러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이에 왕은 군신과 더불어 더할 수 없는 커다란 소망을 발하여 '대장경' 판본을 새기기로 서약한 즉 그 후에 거란병은 스스로 물러갔습니다. 그렇다면 '대장경'도 한 가지이고, 전란후의 조판도 한 가지이며, 군신이 함께 서원한 것 또한 한 가지인데, 어찌 유독 그때에만 거란병이 스스로 물러가고, 지금의 몽고는 그렇지 않겠습니까? 다만 제불다천(諸佛多天)이 돌보아주시는 여하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ㅡ 이규보,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 <김삼웅, '겨레유산이야기', 삼인, 1998, p.39-40>

    [원문] 國王諱。謹與太子公侯伯宰樞文虎百寮等。熏沐齋戒。祈告于盡虛空界十方無量諸佛菩薩及天帝釋爲首三十三天一切護法靈官。甚矣達旦之爲患也。其殘忍凶暴之性。已不可勝言矣。至於癡暗昏昧也。又甚於禽獸。則夫豈知天下之所敬有所謂佛法者哉。由是凡所經由。無佛像梵書。悉焚滅之。於是符仁寺之所藏大藏經板本。亦掃之無遺矣。嗚呼。積年之功。一旦成灰。國之大寶喪矣。雖在諸佛多天大慈之心。是可忍而孰不可忍耶。因竊自念。弟子等智昏識淺。不早自爲防戎之計。力不能完護佛乘。故致此大寶喪失之災。實弟子等無狀所然。悔可追哉。然金口玉說。本無成毀。其所寓者。器耳。器之成毀。自然之數也。毀則改作。亦其所也。況有國有家。崇奉佛法。固不可因循姑息。無此大寶。則豈敢以役鉅事殷爲慮。而憚其改作耶。今與宰執文虎百僚等。同發洪願。已署置句當官司。俾之經始。因考厥初草創之端。則昔顯宗二年。契丹主大擧兵來征。顯祖南行避難。丹兵猶屯松岳城不退。於是乃與群臣。發無上大願。誓刻成大藏經板本。然後丹兵自退。然則大藏。一也。先後雕鏤。一也。君臣同願。亦一也。何獨於彼時丹兵自退。而今達旦不爾耶。但在諸佛多天鑑之之何如耳。苟至誠所發。無愧前朝。則伏願諸佛聖賢三十三天。諒懇迫之祈。借神通之力。使頑戎醜俗。斂蹤遠遁。無復蹈我封疆。干戈載戢。中外晏如。母后儲君。享壽無疆。三韓國祚。永永萬世。則弟子等當更努力。益護法門。粗報佛恩之萬一耳。弟子等無任懇禱之至。伏惟炤鑑云云。<東國李相國全集卷第二十五/한국고전번역데이터베이스 제공>

    [원문이미지] <한국고전번역데이터베이스 제공>

    ◆[이미지/화중광야제작] 국가의 지도자는 국란을 만날 때 덧보인다!! 비굴하고 야비하게 직분을 떠난다고 해서 지도자가 아닌 것이다!! 백성들(민초들)과 함께 국가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혼신을 다하는 자가 참다운 국가의 지도자상이다!! 위 이미지는 1237년 몽고군이 침입하자, 고려의 왕 고종이 신하들과 함께 한 마음 <불심>(佛心)으로 국가를 지키려고 발원한 기도문인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 원문이다!! <2014.4.28>


나라가 위태로울 때, 불사(佛事)에 정진한 것은 우리 <대칸민족>의 경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장경>(藏經)을 제작해서 불경을 전파시킨 일이다. 이것은 중국의 사례에서도 찾아진다. 광활한 영토 만큼이나 중국은 통합과 분열이 계속되어 진다. 그 중에서 <오대십국>(五代十國)을 소개한다:

    오대십국(五代十國/ A.D.907-960년) ㅡ 안록산의 난에 의한 당나라의 멸망이후 송나라 건국 때까지의 혼란의 시대를 가리킨다.

    당나라 시대 말기, 중국 대륙 각지에 형성된 군벌호족 세력은 그 기세가 한층 더 확장되었다. 서기 907년, 당 선무절도사(宣武節度使) 주전충(朱全忠)은 당애제(唐哀帝)를 협박하여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뒤, 후량(後梁)을 건립하니 이로서 중국은 오대십국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907년에서 960년까지 중국 황하유역에는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등 다섯 왕조가 연이어 출현하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오대>(五代)라 칭한다. 이와 동시에 남방에서도 전촉(前蜀), 오(吳), 민(閩), 오월(吳越), 초(楚), 남한(南漢), 남평(南平), 후촉(後蜀), 남당(南唐) 등 아홉 개의 군벌호족들이 할거(割據/지역을 서로 나누어 차지함)하여 수립한 정권이 출현하였으며, 산서(山西) 지역에 건립한 북한(北漢)을 합쳐 역사상 <십국>(十國)이라 칭한다. <위키피디어 정리>.

그러나 <오대십국>은 중국이 <위진남북조>(魏晉南北趙) 이후 다시 분열과 혼란에 빠진 시대였다:

    각지의 백성들은 분열과 할거로 인해 초래된 여러 재난에 저항하였으며, 또한 중국인들의 힘을 모아 거란족의 침략에 따른 약탈을 막기 위한 통일을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대 후기에 이르러 통일의 추세는 날로 명확해졌다. 이에 979년에 이르러, 북송이 다시 한번 중국을 통일하니 오대십국의 할거는 이로서 종말을 고했다.

    오대십국 시대에 북방은 전쟁과 난리가 빈번하고 정국은 혼란스러운데 반하여, 남방은 상대적으로 안정되었기 때문에 중국대륙 전체의 경제중심은 황하유역에서 장강(양쯔강) 유역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농업, 수공업, 그리고 상업 등이 비교적 발달하였고, 해상무역 또한 상당한 번영을 이루었던 시대이기도 하다. <위키피디어 정리>


한편, 오대(五代)의 마지막 왕조 후주(後周)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였던 조광윤(趙匡胤)은 정변을 일으켜 지배권을 장악하고 송을 건국하였고, 도읍을 변경(汴京=開封)에 정하니, 이가 곧 송조의 태조이다. 후에 북방에 거란(契丹=遼)이 일어남으로 상쟁하다가 여진(女眞)과 함께 요를 멸망시켰으나, 여진이 곧 금(金)과 함세함에 드디어 송은 휘종(徽宗)과 흠종(欽宗) 때에 금의 침략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그러나 그 일족 고종(高宗)은 남방으로 도피하여 항주(杭州)를 도읍으로 정하고 여기에 송실(宋室)을 건립하였다. 전자를 <북송>(北宋)이라 칭하고, 후자를 <남송>(南宋)이라 부른다. 후에 북방에서 일어난 원(元)에게 멸망하였으니, 그 동안 <북송 167년>, <남송 150년> 전후 370여년에 이른다.

중국은 이처럼 당 말기로부터 오대에 이르기까지 불교는 매우 쇠미(衰微)하였다. 송의 통일과 역대 제왕의 불교외호(佛敎外護)에 의하여 부흥하였으나, 송대의 불교는 수당(隋唐)의 불교가 부흥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수와 당의 불교를 유지 계승시키는데 불과하였다. 그렇지만, 중국불교는 인도사상의 이식에만 그친 것이 아니란 점이다. 이것이 유교(儒敎)에도 영향을 주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송조(宋朝)가 세워지자(AD 960년), 태조(太祖)는 폐불(廢佛)을 정지하고 사원(절)을 건립하여 경(법문)을 독송시켰다. 그리하여 태조 개보(開寶) 4년(971년)에 성도(成都)에서 <대장경>(大藏經)의 조조(彫造/판각)를 시작, 태종(太宗) 태평흥국(太平興國) 8년(983년)에 완성하여, 제실(帝室)에 헌납시켰다.

중국의 경우, 인쇄술은 이미 당대에서 개시되어, 불전(佛典)의 인행도 다소 행하여 졌으나, 아직은 성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송의 태조에 이르러 <대장경> 5천여권의 출판사업이 기획되어 완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이 대불사(大佛事)는 송대에서 태조 이후로 5회에 걸쳐서 행하여 졌으니,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제1회 대장경 완성> ㅡ 태조가 장종신(張從信)에게 명하여 12년간에 걸쳐서 완성한 5천여권의 불전(佛典)이며 일명 <촉판>(蜀版)이라 부른다.

    <제2회 대장경 완성> ㅡ 북송의 신종(神宗) 원풍(元豊) 3년(1080년) 복주(福州/복건성 소재) 동선사(東禪寺)의 주지 혜공대사(慧空大師) 충진(沖眞)에 의해 계획된 개인 출판으로서, 후에 그의 제자들이 상속하여 휘종 숭녕(崇寧) 3년(1104년)에 이르러 24년간에 걸쳐 완성하였다. 그후 숭녕 3년 이후 정화(政和) 2년(1112년)까지 신역 천태부(天台部)의 장(章疏)를 추조(追離)하여 완성하기에 이르렀는데, 모두 6천여권으로서 이것을 <동선사판>(東禪寺板)이라 부른다.

    <제3회 대장경 완성> ㅡ 북송 휘종 정화 2년(1112년)에 복주(福州)의 개원사(開元寺)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오(本悟) 본명(本明) 이하의 사람들에 의하여 남송의 고종 소흥(紹興) 16년(1146년)에 이르기까지 40년간에 걸쳐서 완성된 개인판이다. 이것도 그후 효종(孝宗) 건도(乾道) 8년(1172년)에 소왕(紹王)이 선종부(禪宗部)를 넣어서 6천여권이 되었다. 이것을 개원사판(開元寺板)이라 부른다.

    <제4회 대장경 완성> ㅡ 소위 송판(宋板) 혹은 사계판(思溪板)이라 부른다. 천태(天台)의 정범(淨梵), 선종(禪宗)의 회심(懷深) 등에 의하여 호주(湖州) 사계(思溪/절강성 오흥현 소재)의 원각선원(圓覺禪院)에서 왕수종(王水從) 등의 시재(보시)로 각인된 개인판이다. 북송으로부터 넘송에 이르기까지 출판된 것이 무려 6천여권에 달한다.

    <제5회 대장경 완성> ㅡ <磧砂板>(적사판)이라고도 하는 것인데, 남송 이종(理宗)의 소정(紹定) 4년(1231년) 경 이홍도(泥弘道) 등의 발원에 의하여 호남성 평강부  적사(磧砂)에 소재한 <연성사>(延聖寺)에서 개판(開板)하고, 그후 계속하여 원(元)에 이르러서도 추조(追離)되어 왔다. 총수 6,362권에 달하는데, 여러 차례 전쟁으로 인하여 소실되어 전모를 알 수 없었는데, 근래 협서성(狹西省) 장안(長安)의 와룡사(臥龍寺)와 개원사(開元寺)로부터 이 대장경(大藏經)이 발견되었고, 영인됨으로써 처음으로 <磧砂板>(적사판) 대장경임을 알게 되었다.

    <李外潤, '護國佛敎의 理念과 實踐', 護國佛敎運動總聯合會, 1988, p.150-158> (본서를 필자에게 기증해 주신 OO서점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본판은 송판(宋板) <磧砂板>(적사판)에 수록된 <대반야경>(大般若經)의 일부분이다.


[말법시대에는 <백제의 불교>가 회복되어 천하를 통일하도다!!] <앞글에서 계속/자세히보기>

어느 새 시간이 흘러갔나 보다 저 깊은 산속 산사(山寺)로부터 울려 퍼지는 범종(梵鐘) 소리...새벽이 깨어남을 알려준다. 새벽녘에 울려 퍼지는 이 범종 소리를 들으면 우리를 마음속에서 모든 생각이 싹 사라져 버린다. 거기에는 나(我)라고 할 것도 없고, 또 내가 아니라고 할 것도 없게 된다. 오직 범종 소리만이 온 우주를 채울 뿐이다. 명동촌의 겨울밤은 이토록 지새우고 있다. 야급(野給)은 잠시 말을 멈춘다.

'벌써 날이 새는구나. 아니 우리 라옥(羅屋)이랑 라해(羅海)가 졸지두 않고 이 오라비의 말을 귀담아 주니...나 또한 잠이 다 달아 났구나.

'오라버니께서 이리도 귀한 말씀을 전해 주시는데...이런 애길 어디서 듣나요...'

'라옥'(羅屋)이 호기심에 가득차 있었다. '라해'(羅海)의 두 눈동자는 또리방 구르고 있었다.

'저두 언니 생각과 같아요. 오라버니 이 말씀은 평생가야 한 번이라도 들을까 말까 한...여기에선 아주 듣기 힘든...아주 소중한 말씀이라구요...뭐시기 출출하실턴데...먹을 것 가져 올께요'

'아니 됬다. 난 얘기 중에는 별로 들지 않는 버릇이 있어. 괜찮아...이 얘기 마정하고...얼른 들 자야지...니들도 무진장 피곤할턴데...참,
'라해'(羅海)야, 붓과 종이 좀 가져다 줄래?'

'네...'

'라해'(羅海)가 웃목을 갔다 온다.

이거면 되겠어여, 오라버니?'

'그래...됬다.'


야급(野給)
은 밥상 위에 한지(창호지)를 펼친다. 그리고 종이 위에 붓으로 적어나간다.

'아까두 잠깐 꺼냈듯이, 가야산에 해인사가 있는데...지난 9월 27일부터 11월 10일까지 45일간 <팔만대장경>에 관한 축전이 있었단다: 공식 명칭이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이었지. 그리고 영어명칭이 <Millennial Anniversary Of The Tripitaka Koreana>이었단다. 자, 그런데 문제는 이 영어 명칭이었지. 이 명칭으로는 우리 고유의 유산인 대장경의 속내와는 동떨어진 표현이라는 것이었다. 자, 이제부터 잘 들어야 한다:

    '첫째, 'Tripitaka'는 삼장(三藏)이란 뜻인데, 니들 왜 '삼장법사'(三藏法師)란 말 들어봤니??'

'저기 서유기에서 손오공과 함께 나오는 그 '삼장법사' 말예요??

'그래...
이 명칭은 인도에서 경을 모은 '경장'(經藏), 율을 모은 '율장'(律藏), 논을 모은 '논장'(論藏)을 합해서 삼장이라고 부르는 데서 유래했단다. 이 삼장이 불경의 3요소가 되는데, 이것을 모두 통달한 대덕고승(大德高僧)을 일컫는 말이지...그런데 우리 대장경은 인도의 삼장에 포함되지 않은 다양한 문헌 형식들이 들어가 인도 삼장의 범주보다 훨씬 넓기 때문에 '삼장'이라는 명칭은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게야...'

'아, 그래요!!??'

'라옥'(羅屋) '라해'(羅海)는 호기심이 가득차 있다.

    '둘째, 'Koreana'란다. 이 글자는 라틴어야. 그래서 'Tripitaka Koreana'는 산스크리트어-라틴어 혼합어인 것이지.'

'이건 표현이 잘못된 것 같네요. 그 나라 유산 명칭은 현지 발음표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통례이잖아요...왠 라틴어가 들어간데요??...'

'그래,
라옥(羅屋)이 니 말이 맞아. 전혀 우리와는 무관한 라틴어가 끼어든 거지...이는 이번 축전의 배후세력으로 라틴계열이 깊숙히 파고들어 와 있다는 증거지...라틴계열이면 뻔하잖니...어떻게든...저 라틴종교는 우리 한반도를 집어 삼킬려고 갖은 술수들을 이용안하는데 없어...거란족침입이라든지...몽고족침입이라든지...왜구침입이라든지...모두가 용병들이었지...그 배후가 바로 이 라틴종교인게야...이걸 우리가 막아내야 해...1천년전에 <고려> 이 땅에 저 북방의 거란족과 몽고족이 침범해 들어 왔을 때, 왕을 비롯한 온 세상이 일심으로 불법(佛法)과 불심(佛心)으로 정진해서 나라의 위태함을 막아냈거든...요즘처럼 나라가 위태할 때를 대비해야 할 턴데...그래서 우리 불교를 <호국불교>(護國佛敎)라고 칭하는 것이지...저 왜구들을 몰아내고 평화를 되찾고 참다운 광복을 이룰려면, 불교에 정진해야 되지...불교 중에서도 고구려불교(高句麗佛敎)니...신라불교(新羅佛敎)니...이미 그 역할을 다 함이요...예를 들어 신라불교의 대표 유산인 <에밀레종>(봉덕사 선덕대왕 신종)은 유리관 속에 봉해져 있으니...종으로서 아무런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지...끝나버린 거지...이제 남아 있는 것은 유일하게 백제불교(百濟佛敎) 뿐이란다. 고구려와 신라 두 불교는 거의 다 발굴되어 버렸지...더 이상 나올게 없는데...이에 비해서 백제불교는 아직도 그 증거들이 발굴되고 있어...이 말법시대(末法時代)를 위해서 이제서야 시방삼세(十方三世)에 드러나는 거지...특히 저 아래 전라도에 익산(益山)이란 곳에 있는<미륵사지>(彌勒寺址)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야...왜 그런지 아니??...말법시대란 크리스투교의 성경(聖經)을 통해서 말세(末世)를 지향하는 이치와 동일한 거지...한 마디로 <끝> 다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지...온가지 사방을 둘러봐도 오탁(부패)해 있고...부정이 넘치고...백성들을 지켜야 할 정부가 오락가락 하고 있는 이런 판국에 크리스투교의 설교니 찬송이니 하는 것으로는 턱없이 역부족이거든...불교란 인간의 마음의 근본 곧 '촌심(寸心)이 청정해지고 요동치 않도록' 일심 지극정성으로 <나>(我)를 벗어버리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도록 <도>를 닦고 <수행>에 정진하는 거지...그래서 절에서는 그 정진이 온 우주에 울리도록 범종(梵鐘)을 타종하는 거란다. 범종이란 그뜻 그대로 맑고 깨끗한 소리요, 이런 소리가 중생의 심금을 씻어낼 수 있는 요걔(要介)인 것이란다.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다툼(전쟁) 대신에 화해(평안)는 저절로 성취됨이니, 이를 가르켜서 정토(淨土))라 칭하는 것이란다.'

야급(野給)은 점점 강한 어조로 이어나간다...

'다시 말해 두지만,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의 한 시대를 이루었던 <대장경>은 문자 그대로 옮겨야 하는 게지...이렇게 말이다...<고려대장경>은 <Goryeo Daejanggyeong> 이렇게 하고...<팔만대장경>은 <Palman Daejanggyeong> 이렇게 말이다...이는 우리 <대한민족> 만이 보존해오고 있는 유일한 고유명사이니까 말이다...그래서 지난번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은 이벤트성이 농후하였다는 평가란다...무언가 '지방자치제'라 해가지고 온통 우리 민족의 정통성이 마구 훼손되어 가구 있어...큰일이란다...이를 다시 회보시킬려면...에전같이 강력한 중앙집권제로 돌아가서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어야 하는데...언론플레이를 통해서 <개국>이란 말이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는데...이 언론 미디어는 민초들편이 아니라...저 가짜 유태인들이 <돈>으로 물먹여 놓아 조종하고 있는 앞잡이들인 것이지...그래서 <컨트롤타워>라는 용어가 서슴없이 나오는게지...이 용어는 미국의 네오콘이 사용하는 용어지...저들이 애기하는 <개국>은 현재 체제를 엎어버리고, 자기들 아젠다(의제)가 들어가 있는 정치로...한 마디로 혁명인 셈이지...그리하여 <여당>이니 <야당>이니 구분도 모호해져 가고...보이지 않게 <야당>을 장악할려고...자기네 편을 '위장시켜서' 침투시키고 있으니...영락없는 미국판 정치/언론미디어 판도인데...앞으로가 심히 걱정된단다...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온통 <비밀집단>에 직간접으로 연루된 자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이 어디 백성을 위한 정치인가 말이다...

자, 오늘은 이쯤 해두자...담 얘기는 나중에 해주마...날이 밝아왔으니...어서들 니들도 눈 좀 붙여야지...'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다음 글 주제] <미륵불(彌勒佛)이시여, 속히 이 땅에 오시오소서!!>

[부록] [순망치한(脣亡齒寒) ㅡ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는 뜻]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은 백제(百濟)범 시조 온조왕이 재위 16년에 마한을 쳐서 병합하려 할 때 신하들에게 한 명언이다. 즉 백제와 마한은 접경하여 있으므로, 마치 백제가 치아(齒牙)라면, 마한을 입술에 비유하였다. 만약 입술이 없어 찬바람이 치아를 얼게 하면 그 치아는 얼어서 저절로 무너질 것이다. 그러므로 훗일에 후회를 안하려면 이왕 망하여 없어질 마한을 쳐서 백제가 아우르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창업한 백제는 고구려와 산라와 더불어 삼국으로 정립하였다.

[오늘날처럼 시대가 불확실하고 공포와 전쟁의 위협 속에서 '불면증'(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우, 범패에 귀를 기울이면 마치 아기를 재우는 엄마의 토닥거리는 자장가처럼 들릴 것이다!! 어차피 인간이면 흙(아다마)으로 돌아가기(창세기 3:19 참조) 마련이지 않은가!! 특히 이번 진도 앞바다에서 숨진 많은 혼령들을 위로(천도)하는 의미에서 소개하는 것이다!! 이번 진도 앞바다라는 곳은 왜놈들이 전라도를 침공할 때 활용하던 해로였다. 문득 그들을 수장시킨 <이순신 장군>을 떠오르게 한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문화공보부, '아산현충사연혁지', 1969>. '현충사'는 필자의 고향 '아산군 배방면'에 자리하고 있다. 큰 형님은 이곳으로 소풍을 다녀오셨다. 속칭 '뱀밭'이라고 불렀다. 위 이순신 장군의 장검들은 얼마나 무거운지 장정 둘이서 검날을 갈았다고 전해 주셨다. 이 검들로 미루어 볼면, 이순신 장군은 품격이 제법 크셨음을 알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소리가 인간의 마음과 합일될 때, 원융과 조화가 이루어지며, 침다은 평안이 찾아오는 법이로다!! 오늘도 하늘에다 온통 독소를 뿌려대고 봄게절에 때아닌 여름계절이고, '질서'를 파괴시켜 '혼돈'을 조장시켜 가면서, 온통 디지털과 전자 리듬에 현란한 음원을 들어 보았지만, 지금 어린 자녀들들은 둔 부모들은 이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철저하게 대비시키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범패(梵唄)는 절에서 재(齋)를 올릴 때 쓰는 음악이다. <한국불교음악>의 총칭으로 일명 범음(梵音)·인도(印度)소리, 또는 어산(魚山)이라고도 한다. 범패는 가곡, 판소리와 함께 한국 3대 성악으로 불린다. 다음은 용운 스님의 범패 한 가닥을 소개한다:

◆[BGM/범패 대중창] <제목/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 ㅡ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를 가사로 한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대비관세음보살의 원력이 담겨 있는 다라니이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이 다라니를 설하신 것도 일체 모든 생명으로 하여금 안락함을 얻게 해주시고자 하심이었으며, 또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려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관세음보살의 다라니인 신묘장구를 일명 <대비신주>(大悲神呪)라고 칭함이다. 본 천수다라니는 불공, 49재나, 천도재,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구병시식에도 사용된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부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 범패'가 한국 문화재로 등록되기 전까지는 용운 스님의 공력이 지대하다 하겠다. 위 이미지는 생전에 친히 용운 스님이 쓰시던 범패 도구들이다. 꽹가리(광쇠), 징, 북과 소종 채이다. 장고만 있으면, 영낙없는 우리 민속의 사물악기와 다른 바가 없다. 시간이 주어지면, <한국불교음악>을 소개하기로 한다.

[다음 글 주제] <미륵불(彌勒佛)이시여, 속히 이 땅에 오시오소서!!>

 

<Created/20140425> <Updated/20140426><20140428><201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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