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03:36] 찬송가 '빈들에 마른 풀같이'(SHOWERS OF BLESSING) ㅡ 연주/다니엘정(DANIEL CHUNG)


[花中曠野 大河秘史] 들새바람 '野風' ㅡ <제2부ㅡ강화도의 눈물> INTRO ㅡ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한다!!]

본 필자는 여건이 허락되면, 조만간 강화도(江華島) 현지를 답사할 계획이다!! 그리고 <제2부>에 올려질 배경음악은 다양하게 범위를 넓혀서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의 선조들이 그토록 애창/애송하였던 곡들을 찾아내어 올릴 계획이다!!

지금 듣고 있는 배경음악은 <다니엘 정>이 2006년 연주, 발매된 한국찬송가 <172장 빈들에 마른 풀같이 ㅡ SHOWERS OF BLESSING>이다!! 이 연주음악은 필리핀 형제자매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나누고자 올린 것이다!! 비록 가난하여도, 그들의 속으로부터 흘러넘치는 '카도쉬(KADOSHI/성숨님)의 은혜가 온누리에 펼쳐지도록 기원한다. 샬롬!! <2016.7.27/깊은밤>

[SPECIAL SYNOPSIS FOR FOREIGN READERS]

If time allows, I would like to plan to visit Ganghwa island and the back ground music in the <2nd Part> will include various selections beyond genre. I will try to find and upload those tunes that were loved and enjoyed by our ancestors of Korea(THE GREAT KAHN).

The current back ground music is a hymn song 'SHOWERS OF BLESSING,' and I wanted to give it to our brothers and sisters in the Philippines, sharing warm peace and consolation with them. Even though being poor, I always pray that their 'KADOSH'(The Spirit), the inner peace coming from their deep inside over flows gracefully to their life and to their people. Shalom!! (Translated By Shariah Chung)

[김동기의 기도] '예호바는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방패이시요!! 찬양 가운데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그날이 올때까지, 어떤 고난이 닥치드라도, 예호바 그분 만을 믿고 나아가게 하소서. 참다운 아다마(흙덩이)로 지음받은 자, 곧 '철과 흙이 섞이지 않았으니...흙으로 만들어진 살아았는 영원한 생명의 그날이 이루어지기까지...어떠한 환난이 닥쳐와도...그 사역을 감당케 하옵소서!! 오직 그 말씀이 씨앗이 되어 열매를 맺기까지 '단비'를 내리소서!! 에호슈아 크리스투 그 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민.' (2016.7.26/한밤중)

[부록][멈춰버린 물레방아][지금은 뇌리에 잠겨져 이따금 되실아날 뿐!!...차라리 망향의 세월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면서 고향의 추억에 잠겨보련다!!]

◆[BGM/03:26] 곡목/망향가 ㅡ 작사/김용호 ㅡ 작곡/양상포 ㅡ 노래/박재홍 (196?)(1975)

1. 내 고향을 이별하고 타향에 와서/ 적적한 밤 홀로 앉아서 생각을 하니/ 답답한 마음 아아 누가 위로해

2.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내 어머님이/ 문밖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아 귀에 쟁쟁해


필자가 젊었던 시절에 외국 팝송을 우리말로 번안하여 유행하던 노래가 있었다. 가사 중에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영국 팝싱어 톰 존스가 부른 원곡 'Proud Mary'를 번안하여 조영남 씨가 부른 '물레방아 인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가요 중에는 이 보다 물레방아가 간간히 등장하였다. 그 중에서 박재홍 씨가 부른 '물레방아 도는 내력'이 우리에게 심오한 옛날의 정서를 풍겨줄 것이다. 1950년대 유행하였던 이 노래가 문득 떠오른다:

    벼슬도 싫다만은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길쌈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고향을 잃은 길손 건너게 하며/ 봄이면 버들피리 꺾어 불면서
    물방아 도는 내력 알아보련다


물방아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을...' 등등이다. 또한 전근대적(前近代的) 농촌을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과 애정관계를 묘사한 '나도향'의 소설 '물레방아'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물레방아는 오늘날 우리에게 낭만적인 노래가사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가 아니었고, 더구나 청춘 남녀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장소를 만들어 주기 위해 한가롭게 돌던 것만은 아니었다.

물레방아는 전례의 농기구 일종으로 물의 힘을 이용, 물레처럼 생긴 바퀴를 돌려 보리와 쌀을 찧었고, 때로는 탈곡이나 제분에도 이용했으며, 그리고 발전(發電)에도 이용해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었다. 지난 1960년대 이전만해도 우리나라 농촌지역에서 흔히들 볼 수 있던 물레방아는 물이 떨어지는 힘으로 바퀴를 돌리는 것과 드물게는 물이 바퀴 밑으로 흐르는 힘을 이용하는 밑방아도 있었다.

한국에서의 대중가요는 서양음악의 수입과 더불어 시작된다. 즉 선교사들에 의하여 찬송가를 중심으로 한 서양음악이 들어오자(1885), 서양의 노래들이 번안되어 불리기 시작하였다. 1885년 미국의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선교사역과 교육사업(배재학당 ·이화학당 등)을 시작하면서 찬송가의 보급과 더불어 ‘창가'(唱歌)라는 신식 노래가 등장하였다.

1900년대 초반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1945년 해방과 더불어 1948년 건국 이후 '고향초' '아내의 노래' '목장의 노래' 등을 보급, 새로운 한국가요의 맥락을 찾아갔다. 미국의 팝송과 재즈의 기법이 한국가요에 도입되던 시절에는 현인의 노래 '신라의 달밤'이 공전의 히트곡이 되었다. 이 무렵에는 원시적인 레코드제작법에서도 새로운 가요가 많이 만들어졌다. '명동야곡' '고향만리' '울어라 은방울' '선죽교' '백팔염주' '저무는 충무로' '비내리는 고모령' '럭키 서울' 등이 그것이다. 이 때는 새 가요가 레코드보다 무대공연에서 더 많이 불리고 대중에게 애창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1950년 6 ·25전쟁으로 유명한 가요인들이 희생되었고 납북되기도 하였다. '전우야 잘 자라'(박시춘 곡, 현인 노래)는 공전의 히트를 하여 북진하는 국군과 더불어 전국에 널리 퍼졌고, 1 ·4후퇴 이후 실향민의 쓰라린 생활고의 현실은 '굳세어라 금순아' '슈샤인 보이' '이별의 부산정거장' '단장의 미아리고개' '추억의 40계단' '비내리는 호남선'(박춘석 작곡) '물레방아 도는 내력'(이재호 작곡) 등에 표현되어 널리 애창되었다.

아무튼 나의 기억으로는 이 노래는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3-4학년 시절에 무척이나 유행되었고, 나 역시 자주 불렀던 노래였다. 그 당시에 나의 아버지께서는 직조공장을 하셨기에, 우리 집에는 직조공녀들이 많았다. 손과 발로서 인조견을 짜서 일본에다 수출하는 것이었다. 직조공녀 누나들이 가르쳐 주면서 함께 불렀던 기억들이...바이올린을 잘 키셨던 아버지...창가를 잘 부르셨던 어머니...이 오랜 추억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이러한 '물레방아 도는 내력'이 언제 멈춰 버렸는지...멈춰 버린지 오래다. 왜 그랬을까...왜 그랬을까...<2010.3.15/늦은저녁><2016.7.29/깊은밤/보정하다>

 
 
<Created/20160727> <Updated/201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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