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화중광야 서곡'(2005) ㅡ 작곡연주/정동윤>


[野風 - 들새바람] [PROLOGUE ㅡ 프로로그]


역사는 거슬러 흐르지 못한다. 창조자 하나님의 인류구원의 실체인 절대주권시간(크로노스)에 대하여 투영되는 그림자로서의 선택시간(카이로스)이다. 그래서 창조자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면 인간이 만들어 내는 역사는 거짓이요 조작이요 음모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 '大桓國'(대한국/대칸국)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민족의 웅대하고 장엄하고 찬란했던 그 고귀한 역사가, 저 질투 투성이로 얼룩져 버린 타국인들에 의해서 처참하리 만치 난도질 당하고 왜곡되어 왔다:

    벌써 많은 역사 연구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것을 왜 묵살하고, 진지하게 연구하도록 장려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역사학자들 간에 오고가는 주류와 비주류의 차이인가? 지금까지 내려오는 왜곡된 역사말고, 제대로된 것을 찾아보려고 좌충우돌하는 사람들을 왜 지원하지 않고, 그들을 비주류로서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게 하는가? (안연숙 ㅡ '野風' 필진)


특히 '大桓國'(대한국)의 역사가 한반도에 국한된 것은 조선시대 이후 일 뿐이다. 조선시대에 퍼진 '소중화 의식'(小中華意識)으로 인해 몽골, 만주, 일본에 걸쳐 있던 '한민족'(桓民族/칸민족)의 역사 무대가 한반도로 축소되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 사학계도 이러한 의식 속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중화의식'(小中華意識)은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와 민족에 대해서 문화적 우월감을 가지는 사상이다. 이러한 생각이 우리나라를 발전시키기도 하였고, 때로는 국가를 헤어 나오기 힘든 구렁으로 밀어 넣기도 하였다. 비단 과거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현재 '한민족'(桓民族/칸민족)의 여러 가지 문화, 사회, 사상 속에서 쉽게 발견되고 있는 생각이기도하다. 중국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중화의식'(中華意識)이다. 이 '중화의식'은 하나님의 형제, 자매로서의 인류를 부정하고 있다. 과거 명(明), 청(淸) 시대의 조공 무역과 같은 의식을 가지고 세계를 주도하여 중앙에서 빛나고자 하는 '중화의식'안에는 제공자로서의 중국 민족과 수혜자로서의 타민족만이 존재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도 존재한다. '우리 것과 틀린 문화'를 '수준 낮은 문화'로, '경제적 발전이 느린 문화'를 '저급한 문화'로 매도하면서 우리 스스로 구별지으려 하고 있고, 하나님 안에서의 형제, 자매에 대해서 색안경을 끼고 보고, 심지어는 스스로 눈을 감아버리는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서양의 문화, 일본의 문화에 대해서는 막연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남아시아의 문화에 대해서는 정확한 평가를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조선시대 대명제국을 외치며, 일본에 대해서 내려 보던 당시의 왕과 관료들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한민족'(桓民族/칸민족)은 '하나님의 크신 복주심'(God's Great Blessing)을 받은 나라이다.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신 '섬김의 사랑'으로 대할 때, 진정 그들의 마음의 문은 열릴 것이며, 우리가 뿌리는 '그 복음의 씨앗'은 그들의 마음 밭에서 싹이 나고 자라나서 열매 맺을 것이다.

[이제 때가 이른 것이다]

그 동안 TV를 치운 채 성경번역과 성경풀이에만 몰두해 온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TV가 없었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따금 아들 다니엘과의 대화 중에 TV 드라마 이야기(역사적 사실과 배경음악)를 듣는 중에...혹시나 했었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작은 자극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년전 2009년 8월부터 <국치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필을 들게 된 것이 <호국스페셜>이었다. 그러면서 2010년에는 무언가 새로운 그리고 당연한 숨겨져 온 역사적 사실과 진실이 온 천하에 특히 우리 한민족(桓民族/칸민족) 위에 밝히 드러내겠지 무척 기대를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웬 분위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한 필자로서는 이제는 더 이상 '좌시'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소명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는 불과 수 년전만해도 곧잘 보여졌던 글과 이미지들이 근래  들어서는 많이 사라져 버렸음이 반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어느 집단인지 몰라도 떳떳하지 못한 역사적 자료들은 계속 '삭제하고'(?) 있음이 역력한 것이다.

요즈음 일본 NHK가 방영하는 대하드라마 '료마전'(龍馬伝)이 많은 관심을 가진 모양이다. 이미 잘 알려진 일본 메이지유신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일생전기를 드라마화 것이다. 필자가 늦게나마 지금까지 방영된 30회분을 짬짬이 보았다. 그 이유는 료마의 '나가사키'에서의 활동 가운데서 외국인과의 접촉이 필연적이었을 텐데...최소한 두 명의 외국인은 연관되기 때문에, 드라마에서의 비중의 관계없이 나오겠지 했던 작은 바램 때문이었다. 드디어 필자의 작은 바램은 '29회-30회' 방영에서 맞아 떨어졌다. 바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상인 '토마스 글로버'(Thomas Glover)의 등장이었다. 물론 료마와도 접촉을 가진다. 그런데 필자는 다른 한 가지 작은 바램에 실망을 하게 되었다. 또 한 사람의 외국인은 바로 '귀도 베어벡' 선교사와의 접촉이다. 그런데 베어벡 선교사의 제자들이요, 메이지유신의 공신들인 '사무라이들'(志士)과의 교제 장면들이 생략된다면, 이 드라마는 '역사적 진실'을 저버린 '절름발이' 드라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메이지유신 직전에 44명의 제자들과 함께 찍었던 '우에노 히코마 사진관'(上野彦馬 写真館)이 엄연히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는데...남의 이야기 더 하면 무얼 하겠나...!!

이제 때가 이른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대한국(大桓國)이 흩어져야 했던 '디아스포라'(이산)의 아픔을 어떻게 이겨냈으며,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그 말씀'이 뿌려져서, 일제 치하에사도 '유관순 열사' '주기철 목회자' '윤동주 시인' 같은 '말씀의 순교자들'이신 믿음의 열매들이 있었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써 하나님이 우리 한민족(桓民族/칸민족)을 극진히 사랑하셨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헌데...근래 들어서 또 다시 대한국(大桓國)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지난 120여년간 너무 안일주의와 획일주의와 기복주의에 편집(偏執)해 왔던 우리의 신앙자세에 대하여, 하나님이 다시 한번 '그 말씀'으로 돌아오라는 마지막 경고의 메시지를 들은 것이다.

해서...본 이야기 전개는 어느 특정 종교에만 국한시켜서 전개해 나갈 수 없음을 밝혀두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누구든지 대한국(大桓國) 카테고리 안에 있는 자들이 보고 듣고 깨달을 때, 우리 민족의 긍지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게 될 것이요, 아울러 작금에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전쟁설'을 담대하게 물리쳐 이겨낼 수 있는 그 밑바닥에 깔린 우리 대한국(大桓國)의 정기와 그 저력의 불꽃이 다시 한번 ㅡ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ㅡ 그 대한국(大桓國)의 불씨를 소생시키는데 일조하고자 이렇게 감히 필을 들게 된 것이다.

앞으로 간혹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과정에서 네티즌들이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이 전개될 수 도 있으니, 기존의 타성에 젖어있는 이념에 근거해서 배척하지 말고, 특히 성경을 읽고 준행하는 '신초들'은 각별히 유념해서 눈과 귀를 기울여 주실 것과, 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는 우리네 대한국(大桓國) 후예들에게 본 자료를 링크시켜 주실 것을 당부하는 바이다.

대한국(大桓國)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타민족의 억압을 받는 중에도...'대각성운동의 횃불'은 항상 '작은 불씨'로부터 비롯되었으니...'1907년 평양대각성운동'과 '1919년 3.1운동'이 바로 그것이었다. 역사는 이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대한국(大桓國)의 운명이 다하기 전에, 이것을 소생시킬 수 있는 우리 '한민족'(桓民族)의 저력의 불씨가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간구하면서...말이다...!! 샬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 만일 당신이 하고 싶으신 뜻(블레마)이거든, 이 잔을 내게로부터 옮기소서. 그러나 '나의 뜻'(델레마)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블레마)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누가복음 22:42, KJV화중광야역)

Saying, Father, if thou be willing(블레마), remove this cup from me: nevertheless not my will(델레마), but thine(블레마), be done. (Luke 22:42, KJV)

그 나무 위에 죽으시기 전, 주님이 올리브산에서 드리신 이 기도에는 아버지를 향한 간구와 기도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잔을 내게로부터 옮기소서' ㅡ 이것은 간구입니다. 나의 구할 것을 아버지께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뜻'(델레마)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블레마)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ㅡ 이것은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는 것이 기도입니다. 여기...기도의 뜻을 아주 잘 표현한 찬양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작시/박용주 순복음교회파송 카자흐스탄선교사/2003-2008) ㅡ 작곡/설경욱 목회자 ㅡ 노래/유은성 찬양전도사):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사람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발이 향하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삶 아버지 삶 되기를


이 찬양의 가사대로 사는 삶...그것이 바로 '참십일조의 삶'이며...살(육체)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야콥'이 아닌, 영이 소생한 '이스라엘'의 삶이 아닐까요? (창세기 45:27 참조). 

(2010.7.9/정동윤)

[아빠가 아들에게 전해 주는 작은 선물 CVP-509] 사랑받는 아들 동윤아, 이 귀한 '선물의 손길들'을 영원히 잊지 말고...이제는 너의 '열 손가락'을 주님 앞에 펼치리...'새롭게 하소서' '살레이 살레이 오시누나' '가라시면 가지요' '무흔족'...너의 손 열가락으로 펼쳐지리라... 저 중앙의 대륙으로부터 불어오는 들새바람 '야풍'(野風)과 함께...


울어버린 '화중광야'에 피어나는 작은 꽃이여...울지마라, 아들아!! (일산 스튜디오사건 기도의 응답)

    네가 주님께 드리는 그 고운 열 손가락...(지금 아빠는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다) 그 손가락이 어떤 것인데...왜 그렇게 너의 작은 연주는 처절하게 외면당하여야 하니? 왜 그렇게 아빠의 작은 말씀의 증언이 처절하게 무시 당하여만 하니?

    이것이 현실인 걸 어떡하니? 그래도 전달되고 전해짐은 우리 '예수스 크리스토스', 아멘? 차내에서 먼저 오늘 녹음한 것 듣고 나서 지난 번 너의 부대교회에서 녹음한 것 들어보니 도무지 이게 아냐? 그러니 현실인 것을  어쩌란 말이냐? 참을 수 밖에...

    사랑하는 아들아, 우리 참자. 지금까지도 잘 참아 왔잖니? 주님이 활짝 열어주실 때까지. 참자.

    지금 흐르고 있는 아빠의 이 눈물이 곧 너의 눈물이리니, 함께 울고 있는 이 눈물을 분명 주님께서 받으시리라.

    사랑하는 아들아, 우리 참자. 그 날이 올 때까지, 알았지?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한 여정으로 삼자. 알았지? 참다운 '화중광야'는 너와 내 안에 계시잖니? 샬롬. (2001.6.6/버스 안에서 히동이랑)


(2010.8.4/오후7:4 글을 마치다)


<Created/20100804> <Updated/201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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