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he Temple's Location
  2. The Temple Mount
  3. The Holy City

[화중광야 성전바로알기1]


2천년 동안 유태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성경적인 사실을 거절해 왔다.
왜 그런가? 랍비 쉬라가 시몬스(Shraga Simmons)는 그 이유 중 하나를 이렇게 들고 있다:


예수는 메시야의 예언들을 성취하지 못했다. 메시야가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1. 3차 성전을 건축하는 것(에스겔 37:26-28): "더욱이 내가 그들과 더불어 화평의 한 언약을 맺겠으니, 그것이 그들과 더불어 하나의 영존하는 언약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세우겠고, 그들을 번성시키겠고, 그들 가운데 내 성소를 영원 무궁토록 세우겠다. 나의 장막도 그들과 더불어 있을 것인데, 정녕,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성소가 그들 가운데 영원 무궁토록 있게 될 때에, 이방 민족들이 나 주가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Moreover I will make a covenant of peace with them; it shall be an everlasting covenant with them: and I will place them, and multiply them, and will set my sanctuary in the midst of them for evermore . My tabernacle also shall be with them: yea, I will be their God, and they shall be my people. And the heathen shall know that I the LORD do sanctify Israel, when my sanctuary shall be in the midst of them for evermore.)

2. 모든 유태인들을 이스라엘의 그 땅으로 모으는 것(이사야 43:5,6): "두려워 말라. 이는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라. 내가 네 씨를 동쪽으로부터 가져 오겠고, 서쪽으로부터 모으겠다 . 내가 북쪽에다 말하기를, '포기하라' 할 것이요, 그리고 남쪽에다 말하기를, '감금하지 말라' 할 것이다. 내 아들들을 먼 곳으로부터, 내 딸들을 그 땅의 그 끝들로부터 데려오라." (Fear not: for I am with thee: I will bring thy seed from the east, and gather thee from the west; I will say to the north, Give up; and to the south, Keep not back: bring my sons from far, and my daughters from the ends of the earth;)

3. 세계 평화의 시대를 열고, 모든 증오, 억압, 고통과 질병을 종식시키는 것(이사야 2:4): "민족이 민족을 대적 하여 검을 들어올리지 아니할 것이요, 사람이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아니할 것이다." (nation shall not lift up sword against nation, neither shall they learn war any more.)

4. 인류를 하나로 연합시킬 <이스라엘의 그 하나님>의 보편적 지식을 널리 보급하는 것(스카랴 14:9): "그리고 주님이 모든 땅을 다스릴 왕이 되실 것이니, 그 날 안에 한 분 주님 이 계실 것이요, 그 분의 이름 하나 만 있을 것이다." (And the LORD shall be king over all the earth: in that day shall there be one LORD , and his name one .)


만일 한 개인이 이러한 조건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성취하지 못하면, 그는 <메시야>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미래의 왕에 대한 성경의 예언들을 성취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유태인들은 지금까지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사렛의 예수(Jesus of Nazareth), 바 코크바(Bar Cochba) (편집자주/주후 132-135년 로마군에 대항한 유태인 독립 반란의 주모자) , 그리고 사바타이 체비(Shabbtai Tevi) 를 포함하여 과거의 모든 메시야 주창자들은 거절당해 온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성취하실 것으로 믿고 있으나, 유태인들은 메시야가 이 예언들을 성취할 것이 명백하며, 성경 속에서 <다시 오심>의 개념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신약을 배제시킨고로
그림자인 구약(토라)만 성경으로 받아들이기에
신약(실체)에서 신비(미스테리)로 들어내지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실체를 깨달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 전쟁의 구실을 주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그들의 아니
우리
인류 모두의 메시야 이셨음을 전해야 한다!!
미국이 그 사명을 감당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보호막이 되어 버렸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 임박해지면
국민적 회개(National Repentance)가
일어난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그 분(메시야)이 자기 자신의 백성(이스라엘)을 향하여 오셨고,
자기 자신의 백성이 그 분을 그들에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He came unto his own, and his own received him not.)
<요한복음 1:11>




BGM/ 전용대

이스라엘의 마지막 성전의 정확한 부지는 어디인가?

BETH EL IS THE CORRECT SITE FOR
ISRAEL'S NEXT TEMPLE

글/ Stephen M. St. John 편역정리/ 정재선 목회자

http://mysite.verizon.net/vze4wbps/id2.html

벧엘이 이스라엘의 다음 성전 건축의 정확한 부지이다.
만일 마지막 <3차 성전>의 위치가 잘못 선정되면,
세계 평화는 계속 위협받는다!!


"An Eight Part Peace Proposal for Greater Jerusalem"의 저자는 예루살렘 안의 <성전산>(Temple Mount)에서 일어나는 긴장의 분위기는 순수한 힘을 통한 평화보다는, 보다 많은 이해를 통한 평화에 대한 긴박한 요구가 계속해서 잔존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성경을 제쳐놓은 무시는 <황금사원>(Dome of the Rock)과 <알 아크사 사원>(Al Aqsa Mosque)을 폭파시켜 날려 버리고는, 그 자리에 다음의 유태인 성전을 앉히겠다는 열렬한 주장이 나오는 그 배경이 있는데, 이는 <성전산>이 첫 두 개의 성전들이 자리하였던 역사적 유적지임이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쪽 벽>(Western Wall) 혹은 <통곡의 벽>(Wailing Wall)이 남아있는 <성전산>이 예루살렘 안에서 가장 거룩한 곳이라고 확신한다는 주장이 자주 반복되는데, 이것은 절대로 진실이 아니다. 성경의 첫 번째 다섯권이라고 하는 <오경>( Pentateuch/토라)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예루살렘 안 어느 곳에 하나의 성전을 세우라는 언급이 전혀 없다. 그리고 유태인에게는 <오경>(토라)는 온 인류가 평화롭게 존재하기 위한 하나님의 율법이요, 청사진인 것이다.

평범한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즉 이스라엘의 차기 성전은 <벧엘>(Beth El)과 <아이>(Hai) 사이에 위치하게 된다. 이 곳은 예루살렘의 구성읍 북쪽으로 16킬로 지점이다. 이 곳은 아브라함이 최초로 주님의 이름을 불러 의지하였고, 그 분을 위하여 하나의 제단을 세운 곳이다(창세기 12:8):

"그리고 아브람이 거기서 벧엘의 동쪽에 있는 한 산으로 옮겼고, 그의 장막을 쳤으니, 서쪽은 벧엘이었고, 동쪽은 아이였다. 그리고
그가 주님을 위하여 거기에 한 제단을 세웠고, 주님의 그 이름을 불러 의지하였다."

(And he removed from thence unto a mountain on the east of Bethel, and pitched his tent, having Bethel on the west, and Hai on the east: and there he builded an altar unto the LORD, and called upon the name of the LORD.)


그리고 이 곳은 야콥이 후에 <하나님의 그 집>(the house of God)이요 <하늘의 그 문>(the gate of heaven)이라 불렀던 그 장소이다(창세기 28:17):

"그리고 그가 두려웠고, 말하되, '이 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 이 곳은
하나님의 그 집 이외는 다른 곳이 아니니, 곧 이 곳이 하늘의 그 문 이다.' 하였다."

(And he was afraid, and said, How dreadful is this place! this is none other but
the house of God, and this is the gate of heaven.)

이 곳은 전능자께서 훗날에 야콥에게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될 것이다"(Israel shall be thy name)라고 알려주신 곳이기도 하다(창세기 35:10):

"그리고 하나님이 야콥을 향하여 말씀하시되, '네 이름이 야콥이나, 이제부터 네 이름을 다시는 야콥이라 불리지 아니할 것이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될 것이다 .' 하셨다. 그리고 그 분이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셨다."

(And God said unto him, Thy name is Jacob: thy name shall not be called any more Jacob, but
Israel shall be thy name: and he called his name Israel.)

진실로 <오경>(토라)은 <벧엘>이라 불리운 이 곳이 하나의 영적 중요성을 부여받아 너무 고귀하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지 않은가!

한편, 다윗이 올라와서 예루살렘 안의 <성전산> 부지를 사들인 과정 이야기는 <역대서>에 기록되어 있다. 엄격히 말해서, 이 책은 <창세기> 같은 <오경>이 아니기에, 약간 권위가 약하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전능자 그 분을 그들의 <왕>으로 모시기를 거부하였으며(사무엘상 8장), 한 사람 곧 사울(Saul)을 세워 자기들을 다스리게 하였으니, 그들의 질투의 주님이 서서히 사울의 후임자 다윗 왕(역대상 17장)의 머리 속에 하나의 성전 건축 생각을 넣어 주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의 별들 같이, 바다가의 모래들 같이, 그리고 흙의 먼지 같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번성함을 이미 <창세기> 속에서 미리 언급되었는데, 얼마 안 있어,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조사를 취하는 다윗의 "악마적인 결단"(diabolical decision/사탄의 유혹에 빠짐)이, 다시금 전능자의 오래 지속되는 분노를 일으키고 말았다(역대상 21장).

이같이 전능자의 분노는 결국에 가서는 다윗이 여부스인 오르난(Ornan/동명=아라우나)의 <타작마당>(threshing floor)으로 인도하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분노는 다윗으로 하여금 이 타작마당을 성전부지로 사들이게 하셨다(역대상 21장). 후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이 자리에다 <1차 성전>(the first temple)을 건축하였다. 예전에 여부스인 오르난의 타작마당으로 알려진, 다윗에 의한 <성전부지>의 발견은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에 반대하는 하나님의 보응 행위의 일부였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놀라운 일이나, 성경 말씀 속에 기록된 진정한 사실인 것이다. 더욱이, 다윗을 이곳으로, 곧 여부스인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었고, 지금은 예루살렘 안의 상전산으로 알려진 이곳으로 인도한 전체 사건들의 흐름은, 선견자 갓(Gad)의 간청에 따라 다윗이 선택한 직접 결과였다(역대상 21:11-13):

"그리하여 갓이 다윗에 갔고, 그를 향하여 말하기를, '주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나이다. 삼년간의 기근이든지, 아니면 네 적들 앞에서 석달간 패망하여, 네 대적들의 검이 너를 쫓든지, 아니면 주의 그 검, 곧 역병이 삼일 동안 그 땅 안에 만연하여, 주의 그 천사가 이스라엘의 온 지경을 멸할 것인지 너는 택하라.' 그러므로 이제 내가 나를 보내신 분께 무슨 말을 다시 전해야 할지 결정하소서.' 하였다. 그러자 다윗이 갓을 향하여 말하기를, '내가 큰 곤경 속에 있도다. 이제 내가 주님의 그 손 안에 떨어지리로다. 이는 주님의 자비들이 심히 크심이니, 다만 내가 사람의 손 안에는 떨어지지 아니하리로다.' 하였다."

(So Gad came to David, and said unto him, Thus saith the LORD, Choose thee Either three years' famine; or three months to be destroyed before thy foes, while that the sword of thine enemies overtaketh thee; or else three days the sword of the LORD, even the pestilence, in the l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destroying throughout all the coasts of Israel. Now therefore advise thyself what word I shall bring again to him that sent me. And David said unto Gad, I am in a great strait: let me fall now into the hand of the LORD; for very great are his mercies: but let me not fall into the hand of man.)


이 상황은 <신명기 12:5>에서의 전능자의 거주지 곧 "주 너희 하나님이 선정하실 한 곳"을 찾으라는 하나님의 긍정적인 명령과는 부합되지 않는 것이었다:

"오직 주 너희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들에서 선정하실 그 곳 , 곧 그 분의 거주지를 향하여 너희는 찾을 것이요 , 너는 그 곳으로 올지라."

(But unto
the place which the LORD your God shall choose out of all your tribes to put his name there, even unto his habitation shall ye seek , and thither thou shalt come:)

성경 학자들은 자연히 미래의 <벧엘 성전부지>(Beth El temple-site)에 관하여 회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사실 그들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예루살렘 안의 <성전산부지>(Temple Mount site)가 신학적으로는 물론 역사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도 자명하고, 그러한 전통적인 지혜를 반박하는 어떠한 시도이든 그것은 하나의 미친 짓이요, 하나의 괴벽스럽거나 심지어는 사탄 자신의 일임에 틀림없다고 믿는 경향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이 <성전산부지>에 관한 그들의 견해를 결말낸 것으로 지적하는 것은 <역대하 7:1> 솔로몬의 성전 봉헌이다:

"이제 솔로몬이 기도하기를 마쳤을 때,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왔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불살랐고, 그리고 주님의 그 영광이 그 집을 가득채웠더라."

(Now when Solomon had made an end of praying, the fire came down from heaven, and consumed the burnt offering and the sacrifices; and the glory of the LORD filled the house.)


더욱이 <역대하 7:12>는 한결 구체적이다:

"그리고 주님이 밤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고, 그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고, 이 곳을 희생제사의 한 집으로 나를 위하여 선정하였노라. ' 하셨다."

(And the LORD appeared to Solomon by night, and said unto him, I have heard thy prayer, and
have chosen this place to myself for an house of sacrifice. )

그렇지만 예루살렘 안의 <성전산> 위에 자리한 솔로몬 성전에 관한 하나의 경고가, 솔로몬과의 하나님의 언약 마지막에 포함되어 있다(역대하 7:19-22):

"그러나 만일 너희가 돌이켜, 내가 너희 앞에 세워 놓은 내 규례들과 계명들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가서 섬기게 되고, 그들을 숭배하게 될 것이면, 그 때는 내가 그들에게 주었던 나의 땅에서 뿌리채들까지 뽑아 버리겠고, 그리고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케 해 놓았던 이 집을, 내 목전에서 버리겠고, 모든 이방 민족 중에 하나의 속담과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겠다. 그리고 높이 있는 이 집이 그 곁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놀라움이 될 것이니 , 그가 말하기를, ' 어찌하여 주님이 이 땅을 위하여, 이 집을 위하여 이렇게 해 놓으셨나?' 하면, 그 대답받기를, '이는 그들이 자기들을 애굽의 그 땅에서 데리고 나오신 그들의 조상들의 주 하나님을 버렸고, 다른 신들을 붙들었고, 그것들을 숭배하였고, 그것들을 섬겼음이라. 그러므로 그 분이 그들 위에 이 모든 재앙을 가져 오셨도다.' 하였다."

(But if ye turn away, and forsake my statutes and commandments, which I have set before you, and shall go and serve other gods, and worship them; Then
will I pluck them up by the roots out of my land which I have given them; and this house, which I have sanctified for my name, will I cast out of my sight, and will make it to be a proverb and a byword among all nations. And this house, which is high, shall be an astonishment to every one that passeth by it; so that he shall say, Why hath the LORD done thus unto this land, and unto this house? And it shall be answered, Because they forsook the LORD God of their fathers, which brought them forth out of the land of Egypt, and laid hold on other gods, and worshiped them, and served them: therefore hath he brought all this evil upon them.)

물론 역사는 예루살렘 안의 <1차와 2차 성전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1차 성전>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을 때, 앗수르인들에 의해서 사로잡혀 갔다가 사라져 버린 10지파의 <이스라엘의 집>( House of Israel)를 위해서, 그리고 바빌론인들이 사로잡아 갔다가, 나중에 바사(페르샤) 왕 고레스(Cyrus) 의 칙령에 의해서, 예루살렘으로 귀향하여, <2차 성전>을 건축하도록 허락을 받은 <유다의 집>(House of Judah)을 위하여, 운명이 정해졌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들 중에서 남은 자들은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 걸쳐서 유태인들이라 잘못 존경받고 있는 것이다.

<편집자주/왜 바사 왕 고레스가 2차 성전 재건을 위한 칙령을 내렸는가? 고레스 왕은 에스더와 아하수에르 왕(에스더 1:1)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차후 기회가 주어지면 자료를 통해서 밝힐 예정임). 이스라엘은 모계중심이기 때문에, 고레스 왕은 유태인인 것이다. 이것은 헬라인 아버지와 유태인 어머니 유니게 사이에서 태어난 디모데가 유태인인 것 같과 같은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을 향한 자신의 복음전도의 지휘봉을 디모데에게 넘겨줌은 여간 극적인 동기가 아닐 수 없다(디모데후서 4:9).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외할머니 로이스로부터 거룩한 학문(탈무드, 미쉬나)을 배웠고, 이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성경(토라)을 알았으니, 바울의 복음전도 지휘봉이 디모데에게 전수된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참다운 복음의 제자화인 것이다. 전혀 교리적이거나 신학적인 요소가 첨가되지도 않았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호로고스>(그 말씀)만을 전했음을 주지하기 바란다. 본 칼럼을 올리고 나서 반영되는 질문들의 거의 태반이 "교리, 교파, 교단"에 얽매여서 던져지는 것들이라서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한 것들을 "배설물"로 통감하고, 속히 그런 곳으로부터 빠져 나와서(요한계시록 18:4), 자신의 "행위의 탯줄"(에스겔 16:1-5)을 과감하게 끊지 않으면,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성경 속의 그 놀라우신 <구원의 파노라마>는 열릴 수 없게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신비(미스테리)인 것이다! 세계 역사상, 피비린내 나는 반목과 증오로 얼룩진 전쟁의 연속은(창세기 3:15), 성경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고, 교리, 신학을 배경으로 해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번역하는 오류가 낳은 엄청난 죄악의 산물로 보면 거의 타당하다 할 것이다! 이 적대의 산물인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과 나의 바로 주변에서 용트림하고 있음을 망각하지 말자!>(2005.5.17)

<코란>에 보면, <1차 성전>이 주전 586년에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에 의해서, 그리고 주후 70년에 타이터스(Titus/디도)에 의해서 <2차 성전>이 멸망된다는 언급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음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
너희의 주님께서 이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실지 모르나" (It may be that your LORD may yet show mercy unto you.) (코란/바니 이스라일 17:3-6,8)


재생버튼을 클릭하면, 오디오로 <코란경>을 들을 수 있다!
번역은 <코란한글번역본>(이슬람국제출판국,1988판)을 인용하였다!

"내가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자손을 위한 지침으로서 성경을 주었으며, 말하기를, '오, 내가 노아와 함께 방주 속에 실었던 자들의 자손들아!"

"나 이외에 어떠한 수호자도 두지 말라." 하였으며, 그는 실로 감사할 줄 아는 종이었노라.나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성경 속에서 계시하기를, "너희가 실로 그 땅에서 두 번 범죄할 것이며 또 너희가 지나치게 거만하게 될 것이니라." 라고 하였노라.

그리하여 두 가지 경고 중 첫 번째 것이 왔을 때 나는 너희에 대항하여 전쟁에서 큰 힘을 가진 나의 종들 가운데 일부를 보내었노라. 그들은 너희의 집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뚫고 들어갔으며, 그것은 꼭 이루어져야 할 경고였느니라.

그리하여 내가 그들에 대항하는 힘을 너희에게 되돌려 주었으며, 너희에게 부와 자손을 주어서 너희를 도왔느니라. 또 너희의 수를 많게 하였노라.

너희의 주님께서 이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실지 모르나 만일 너희가 이전 상태로 되돌아 간다면 나도 다시 되돌아 갈 것이니라. 그리고 내가 불신자를 위한 감옥으로서 지옥을 만들었노라.

 
<편집자주/이러한 <코란>의 말씀들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전해졌다. 지난 5월 8일, 뉴스위크 최신판이 쿠바 소재 미군 관타나모 포로수용소 경비병이 화장실에다 <코란>을 휴지로 버렸다는 루머가 전해지자, 지금 이슬람교도들의 반미 시위가 아프간을 시작으로 파키스탄을 거쳐서 인도네시아로 연일 확대중에 있으며, 아울러 사상자들이 속출하고 있다(위 사진). 급기야 5월 16일 현재, 뉴스위크는 위 보도에 대하여 오보였다고 사과했다는 외신이 전해오고 있다. 그리고 한 미군은 이러한 행위는 "범죄행위" 내지는 "반역죄"라고 비난하였다. 항상 편집자가 강조하는 말이지만, 성경 속의 하나님의 계획을 간파하려면, 기독교(성경)는 유태교(토라)와 이슬람교(코란)를 포용해서,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메시야이심을 깨닫도록 사랑으로 감싸줘야 한다.>(2005.5.16)

만일 그들이 <오경>(토라)에만 의하여 인도받을 수 있다면, 그리하여 <벧엘> 안에서의 그들의 완전한 잠재력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불행하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1996년 3월 7일, <편집자주/이 글을 옮기고 있는 2005년 5월 15일 현재까지> , <벧엘> 안에는 성전이 들어서지 않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점령한 <서안>(West Bank)에는 군당국의 본부들만이 남아 있다. <편집자주/게다가 서안 내 팔레스틴인 거주지역의 경계선에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안전벽(Security Wall)을 건설하고 있다. 평화와 화해는커녕, 증오와 보복만이 팽대해지고 있다.>

▲위 왼쪽 지도의 서안(West Bank)에서 노란색 부분을 안전벽으로 삥둘러 막아버림으로써(오른쪽 사진), 팔레스틴인을 가둬두는 분리 정책의 하나인 안전벽이 설치되는 중이다. 이스라엘의 구실은 팔레스틴인들의 무모한 자폭 및 테러 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는 방책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2005.5.15)

철권(鐵拳/Iron Fist) 책략이 팔레스틴의 인티파다(intifada)에 의해서 성공적으로 맞서게 된 이러한 호전적인 시온주의자들이, 실제로 "그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받을 것이다"(shall all families of the earth be blessed)라고 했던(창세기 12:3), 아브라함의 후손들인가?

완고한 관습들과 오랜 전통들이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뉴욕시에 거주하는 한 랍비인 아브라함 스톤(Abraham Stone/주소=770 Eastern Parkway, Brooklyn, New York 11213)이 1993년 11월 19일자 발행 <The Jewish Press> 의 한 신문 기고에서, "<창세기 28:17>로부터 인용된 벧엘의 위치는 사실상 예루살렘 안의 성전산이며, 이 성경 기록은 성전산이 3차 성전이 건축되어질 그 자리"라고 썼다! 스톤은 이 성경 기록이 <3차 성전> 건축에 대하여 아주 정확한 올바른 위치를 알려주는 인정받는 출처임을 인정한다. 그는 <벧엘>이 예루살렘 안의 <성전산> 위치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성경 기록에 의해서 입증되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벧엘>은 성경에서 예루살렘에 관하여 언급되기 이전에, 일찍이 <창세기 12장> 속에 언급되어 있다.

<벧엘>은 <창세기> 속에서 반복하여 등장하는 반면, 예루살렘은 <오경>(토라) 속에서 어느 곳이든지 나타나지 않는다.
<열왕기상 12:25-29>에서 예루살렘과 벧엘이 동일한 맥락에서 각기 다른 두 명칭으로 언급된다:

"그리하여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 않에 세켐을 건축하였고, 그 안에 거주하였고, 그리고 거기로부터 나갔고, 브니엘을 건축하였다. 그 때 여로보암이 그의 마음 속에 말하기를, '이제부터 왕국이 다윗의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 에 있는 주님의 집 안에 희생제를 드리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그들의 주인, 곧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다시 돌아갈 것이고, 그들이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하였다. 이에 왕이 계략을 꾸몄고,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고, 그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 예루살렘 으로 올라가는 것이 너희에게 너무 수고스럽도다. 오 이스라엘아, 너를 애굽의 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네 신들을 보라.' 하였다. 그리고는 그가 하나는 벧엘 안에 두었고, 다른 하나는 단 안에 두니라.' 하였다."

(Then Jeroboam built Shechem in mount Ephraim, and dwelt therein; and went out from thence, and built Penuel. And Jeroboam said in his heart, Now shall the kingdom return to the house of David: If this people go up to do sacrifice in the house of the LORD at
Jerusalem , then shall the heart of this people turn again unto their lord, even unto Rehoboam king of Judah, and they shall kill me, and go again to Rehoboam king of Judah. Whereupon the king took counsel, and made two calves of gold, and said unto them, It is too much for you to go up to Jerusalem : behold thy gods, O Israel, which brought thee up out of the land of Egypt. And he set the one in Bethel , and the other put he in Dan.)

<벧엘>은 이스라엘의 거역하는 왕 여로보암이 유다의 왕 르호보암과의 경쟁을 의식한 나머지, 예루살렘 안 <성전산> 위에 있는 <1차 성전>에서 예배드리러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하나의 금송아지를 안치한 곳이다. 분명히 예루살렘 안 <성전산>과 <벧엘>은 각기 다른 곳이다. 그리고 <창세기 28:17>은 <벧엘>이 전능자가 그 분의 거주지로 선정하신 곳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그가 두려웠고, 말하되, '이 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 이 곳은 하나님의 그 집 이외는 다른 곳이 아니니, 곧 이 곳이 하늘의 그 문 이다.' 하였다."

(And he was afraid, and said, How dreadful is this place! this is none other but
the house of God, and this is the gate of heaven .)

그 외에도 필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첫째, <시편 48:2>에서 다윗은 <벧엘>이 있는 예루살렘의 북쪽 지역들에 특별한 의미를 둔 것 같다:

"북편에 있는 그 크신 왕의 성읍
시온 산 은, 그 자리 잡은 곳이 아름다우며, 온 땅의 기쁨이로다."

(Beautiful for situation, the joy of the whole earth, is
mount Zion , on the sides of the north, the city of the great King.)

이 주제에 대한 하나의 외교적 접근법은, 아랍인들과 이스라엘인들 사이에 마지막 평화협정에서 예루살렘의 대도시 지역에다 <벧엘>을 포함시킴으로써 가능해질 수 있다. 성읍 예루살렘의 영적 중요성은 <벧엘>을 다음 <성전부지>로서 인식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추호도 손상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마지막으로 12지파에 제비뽑아 분배되었던 몫들 중에서(에스겔 48:7-22), 주님의 성소를 위하고. 성소의 제사장들을 위하고, "성읍과 거주지와, 외곽으로 삼는 속된 곳을"(15절) 위한 땅과, 그리고 "나머지는 통치자를 위한 땅으로"(21절) 분리되어 있다. 이 여분의 땅이 "성읍과 거주지와, 외곽으로 삼는 속된 곳"은 물론 "주님의 성소를 위한" 하나의 거룩한 곳을 포함하므로, 성소가 예루살렘 성읍 안쪽에 위치하리라는 추측은 불명한 것이다!

이 도표는 편집자가 킹제임스성경 <에스겔서>를 번역하는 중 2000년 9월에 작성한 것임

둘째, 한 높은 산 위에서 본 미래 성전에 대한 환상을 바라보면서, 에스겔은 <새 예루살렘>의 중심지로서 <옛 예루살렘>이 분명한 "남쪽으로 한 성읍의 형태 같은 것이" 있었다고 지적한다(에스겔 40:2).

만일 예루살렘이 에스겔의 바로 남쪽에 나타난 것이 분명치 않다면, 에스겔은 예루살렘의 바로 북쪽에 서 있었던가? <벧엘>은 예루살렘의 옛 성읍의 바로 북쪽에 위치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미래 성전의 환상을 통해서, 에스겔이 영적 중요성을 지닌 야콥의 한 꿈 속에서 전능자와 교제하기 시작했던 후에 "하나님의 그 집이요 하늘의 그 문"(창세기 28:17) 이라 불렀던 바로 그 동일한 곳인 <벧엘> 안이나 혹은 부근에 서 있었음은 하나의 우연 일치에 불과한 것인가?

랍비 스톤(Stone)은 그의 <벧엘>이 <모리아산>이요, 혹은 그의 <벧엘>이 <성전산>이라는 주장으로부터 약간 물러났다. 그는 1995년 2월 1일자 <The Jewish Press>(p.9)에서, <창세기 28:17>의 <벧엘>에서의 야콥에 관한 언급에서, 주후 1040-1105년까지 유럽 디아스포라(이산) 중에 살았던 저명한 성경 주석가인 라쉬(Rashi)의 글을 인용하였다:

"모리아산(성전산)은 잃어버렸고, 야콥이 누워있었던 부지로 옮겨졌다."


모세 자신에게도 모르는 사이, 현대의 지질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예루살렘의 평화가 달려있는 하나의 진실된 질문에. 무지가 혼합되고 혼돈을 조장함으로써 완전히 거절되고 마는 순수한 넌센스인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 너희에게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으면...이 산더러 '너는 옮겨지고, 너는 바다 속으로 던져지라.'고 말하여도, '그렇게 되리라.'" 하셨듯이(If ye have faith, and doubt not...if ye shall say unto this mountain, Be thou removed, and be thou cast into the sea; it shall be done") (마태복음 21:21),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 벙어리가 없는 것도 역시 진실이다. 한 랍비가 자기 자신의 성경기록 속에 오래 간직된 그러한 중요한 메시지로부터 돌아선다는 것에 동정이 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다(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서를 폐기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이루려고 왔노라." (Think not that I am come to destroy the law, or the prophets: I am not come to destroy, but to fulfil.)

예루살렘 안의 <성전산>은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보응의 메아리들과 직결되어 있다. 바빌론인들에 의한 <1차 성전>과 로마인들에 의한 <2차 성전>의 멸망은, 바로 <레위기 26장>과 솔로몬의 <1차 성전> 봉헌 후에 바로 이어진 앞에서 인용된 <역대하 7:19-22>의 경고를 초월하여, 성도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가 붙잡히시기 직전에, 예루살렘 안의 <성전산> 위에 있는 성전의 건물들을 바라보시며, 그 분의 제자들에게 알리시면서, 그 성전에다 하나의 저주를 내리셨다고 기록하고 있다(마태복음 24:1,2):

"예수님이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고 하셨다." (See ye not all these things? Verily I say unto you, There shall not be left here one stone upon another, that shall not be thrown down.)


마치 인류가 신속하게 21세기에 접근하여서, 현대 전쟁의 기술들에 있어 눈부신 진전을 목격하듯이, 만일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완전히 받아들인다면, 유태인들과 타이터스(디도)가 이끄는 그들의 로마인 정복자들의 최선의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이 완전 멸망의 예언이 아직도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음을 그는 인식해야 한다. 헤롯이 <2차 성전>을 개장한 그 일부인 <서쪽벽>(통곡의 벽>이, 예수님이 "성전의 건물들"( the buildings of the temple )에 대하여 저주를 발하셨을 때도 있었고(마태복음 24:1), 오늘날도 계속 남아 있다! 이 저주의 유적이 원인이 없어지고, 아울러 마음의 변화가 있는데도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고, 사람들이 <벧엘>을 찾아 나선다면, 그 곳이 전능자가 손수 선정해 놓으신 거주지로 가능할까?

수 세기 후에, 예루살렘 안의 <성전산>은 <십자군>(Crusades or Holy Crusades)으로 잘 알려진 수 많은 군대 "원정"(침공)의 목표 지점이 되었다. 이 잔인하고 광기의 무모한 모험들에 쏟아부은 피와 돈과 노력은 잘못 인식된 열광 내지는 종교적 광신자와 결합된 무지(無知)의 소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편집자주/이제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인류의 최대 전쟁인 아마겟돈에서의 싸움으로 가시화되어가는 것이 근래의 경각심을 일으키고 있는 <이란>과 <북한>의 핵 위기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Christian> 혹은 <Christianity>용어에 혼돈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신교로서의 <Christian> 혹은 <Christianity>은 피의 전쟁을 일으킨 예가 거의 드물다. 반면에, 카톨릭교는 <Christian> 혹은 <Christianity>를 내세워서 많은 전쟁과 살육을 자행하였다.

외국의 한 웹사이트를 통해서 이런 자료가 입수되었다:

'Kingdom of Heaven' Disparages Christianity ( http://www.family.org/cforum/fnif/news/a0036523.cfm ). "<킹덤 오브 헤븐>이 기독교를 비난하다" 라는 제목이었다.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한 영화이다. 12세기에 모슬렘의 예루살렘 정복을 다루고 있다. 한 수도승이 "만일 당신이 한 이단자를 죽이면, 당신은 천국에 간다"(If you kill an infidel you go to heaven.) 라고 외치는데, 이것은 전혀 기독교의 신학에 는 맞지 않는다고 기자는 전한다.

여기서 수도승은 카톨릭교도요, 이단자는 모슬렘을 지칭하며, 기독교라는 말은 카톨릭교를 지칭한다. 자칫 속기 쉽기 때문이다.> (2005.5.16)


이렇게 역사의 어두운 장 속에서, 그릇된 <성전산부지>가 유럽의 왕가와 귀족의 가장 값있는 하나의 목표물이 되었다. 심지어는 그 명칭을 <템플러 기사단>(Knights Templars/관리자) (편집자주/1118년경 예루살렘의 성묘(聖墓)와 참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 이라 불리는 종교적 군대교단에게까지 빌려주었다. 이렇듯 그들의 예루살렘 안의 <성전산> 입성은 그들의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하나의 구실이 되어 버렸다.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황제 <오토 폰 합수부르크>(Otto von Hapsburg)의 현존하지 않는 왕좌를 유럽판 인명사전 <Who's Who>에는 <예루살렘의 왕>(King of Jerusalem)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세 시대의 남은 자를 통하여, <3차 이스라엘 성전>의 정확한 부지에 대한 무지는 편견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17세기 초기에, 진실과 소망의 여명이 보였으니, 존 밀톤(John Milton)이 그의 <실락원>(Paradise Lost) 제1권(p.400-405)에서 그가 거짓 신 몰록(Moloch/몰렉)에 관하여 저술하였을 때, 두 개의 성전의 위치, 곧 하나는 올바르고, 또 하나는 틀린 성전 위치를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현명한 마음을 지닌 솔로몬 그가 속음에 이끌리어 그 모욕적인 작은 산 위 하나님의 성전 바로 맞은 편에 그 분의 성전을 지었고, 자기의 작은 숲 힌놈의 기쁨의 골짜기 를 토벳(개역/도벳)과 지옥의 그 형태 (the Type of Hell) 로 불리우는 검은 게헨나로 만들었도다."

밀톤의 재능은 "...그 전을 이스라엘의 그 집에 보여 주어라"(...show the house to the house of Israel...) 하신 에스겔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스겔 43:10)을 명확하게 한다. 그러한 명령을 순종하려면, 선지자는 <벧엘>과 <성전산>과 같이 서로 근접해 있는 두 개의 경쟁하는 <성전부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편집자주/ 위 그림은 1883년 톰슨(Thompson)이 올리브산에서 성전산을 내려다 본 것이다. 지금도 저 후면에 보이는 황금사원 그 자리가 <성전부지>로 보는 관계로, 유태교와 이슬람교가 언제 발발할지 모르는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위 유태교 극우파 <템플마운트 페이스플>(Temple Mount Faithful/위 아랍 소년이 들고 있는 사진 피켓 참조) 단체가 저 황금사원을 폭파시켜 버리고, 그 터 위에 유태인들의 염원인 마지막 성전, 곧 <3차 성전>을 건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마틴 교수는 기존의 성전의 위치를 황금사원 그 터가 아니라, 그 보다 약간 남쪽 아래, 즉 힌놈 골짜기 부근 이라는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본 칼럼의 필자는 에스겔의 환상 속의 성전이 아직도 미완료 상태이기 때문에, 야콥이 돌베게 베고 잠들어, 꿈꾼 그 자리 <벧엘>에서 건축되어야 할 것이라는 성경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하에르츠데일리"에 의하면, <브라트슬라브 하시딕 운동>(Bratslav Hasidic Movement)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극우파 다섯 명이 <성전산>의 황금사원을 폭파할 음모로 체포되었다가 근래 석방되었다고 예루살렘 경찰과 <쉰베트 안전부>( Shin Bet )가 어제 16일(월요일) 발표하였다. 이처럼 예루살렘은 전쟁의 화약고로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 있다.> (2005.5.17)

<편집자주/극우파 유태인들에 의한 성전산에 대한 공격은 이스라엘과 모슬렘 세계 사이에 하나의 대규모 전쟁의 방아쇠를 당기게 될 것이라고, 전 쉰베트 국장 칼미 길론이 목요일(5월 19일) "하에르츠데일리" 에 말했다. 독자들로부터의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에서, 길론 전 국장은 현재 극우파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산 안에 있는 모슬렘 사원들을 폭파하려고 위협하고 있는데, 이러한 행동의 결과는 이스라엘 국가의 존립에다 재앙을 가져 올 수 있으며, 모슬렘 세계와, 이스라엘 및 해외 거주 유태인들 사이에 하나의 전면전(全面戰)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05.5.20)

사실상, 정확한 <성전부지>가 만인에게 아주 분명하게 드러났다면, <이스라엘의 그 집>에게 <하나님의 그 전>을 보여줄 하나의 선지자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온 세계가, 심지어 엘리트로 뽑힌 자들까지도 <3차 성전>의 정확한 부지를 속은 것 같이, 오늘도 예루살렘 안의 성전산에 관한 사건도 마찬가진데, 그렇다면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해서, " 이스라엘의 그 집에 보여 줄" 하나의 예언자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의 그 형태>( the Type of Hell )인 잘못된 선정이 아무런 경고없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예루살렘과 <1차성전>과 더불어 <유다의 그 집>이 바빌론인들에게 굴복하고 사로잡혀갔던 유대인들 가운데에 에스겔도 있었다는 사실도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에스겔이 <그 집을 보여주기로>(show the house) 되어 있던 <이스라엘의 그 집>은 이미 바빌론 사로잡혀가기 훨씬 백여년전 이전에 앗수르인들의 손에 의해서 사라져 버렸다. <편집자주/북이스라엘 열 지파가 앗수르인들에 의해서 5개 성읍으로 흩어졌다가, 그 후로 귀환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이 열 지파의 행방을 추적하는 연구와 자료들이 근래에 많이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추론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해답은 <요한복음 4장>의 수가성읍 우물가 여자 사건의 전말에서 예수님이 이 비밀을 풀어주신다. 이것이 성경의 묘미인 것이다!>(2005.5.17) . 따라서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그 집>과는 직접 관련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가 예언했을 때, 그의 예언들은 "마지막 때"(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때로서의 "종말"은 "하나님의 크로노스 시간"이 완성되는 때/ 열 처녀 비유 참조 )에 관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고로, " 이스라엘의 그 집에 보여 줄" 에스겔의 책무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곧 " 다만
이스라엘의 그 집의 잃어버린 '양들' (편집자주/G4263/προβατον/프로바톤/앞으로 걸어나간 자들/요한복음 21:16,17) 에게로 가라" (go rather to the lost sheep of the house of Israel .) (마태복음 10:6) 말씀과도 적어도 약간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신실한 자와 선택된 자와 진실로 예수님 자신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영적 성전에 대한 크리스천 개념은, 하나의 가시적인 이스라엘인의 성전에 대한 개념을 배제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밥팀례자 요한(John the Baptist)이 명시한 예수님에 의한 밥팀례의 필요성이, 예수님께서 요한의 밥팀례를 배제시키지 않은 것과 똑같은 것이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Suffer it to be so now: for thus it becometh us to fulfil all righteousness.) (마태복음 3:13-15). 다만 <벧엘> 안에서 올바른 위치가 선정될 경우, 이스라엘 안에 다음(3차)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진실로 "모든 의"(all righteousness) 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예루살렘 안의 <성전산>에다 성전 위치를 잘못 선정하는 날에는, 이스라엘 안에서의 다음 <3차 성전> 건축은 세계 평화에 하나의 지속적인 위협으로 남는다. 21세기 직전 10년 동안에, 우리는 예루살렘 안의 <성전산>의 <황금사원>( Dome of the Rock ) 바로 그 자리에다 유태인의 <3차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황금사원>을 날려 버리겠다는 유태인 과격파들의 끊임없는 위협을 이미 겪어오고 있다.

<바브리 사원>( Babri Mosque )의 예를 들어본다. 1992년 12월 6일에, 힌두교의 성시인 <아요드히아토다이>( Ayodhyatoday ) 안에 있는 <바브리 사원>의 파괴는 인도 전역에 힌두교도(8억4천4백만명 전체 인구의 82%)와 모슬렘교도(12%) 간에 격렬한 폭동을 유발시켰다. 모슬렘의 <바브리 사원>은 16세기에 건축되었으며, 흰두교의 신 <람>( Ram )의 출생지를 나타내는 하나의 옛 힌두교 사원의 터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힌두교도들이 <바브리 사원>을 파괴하겠다고 아우성치자, 인도 정부는 그 사원은 보호받을 것이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인도 정부는 하나의 기정사실을 직면하게 되었고, 보호해준다는 모든 약속들은 무의미하게 되어 버렸다.

예루살렘 시장 에후드 올머트(Ehud Olmert)가 장기(長期) 예루살렘 시장 테디 콜렉(Teddy Kollek)을 선거에서 승리하기 직전에, "우리가 황금사원을 쓸어버려야 하지요?" 라고 말함으로써, 역사 자체는 반복될 것인가?

그 반대로, 나는 테디 전 시장이 했던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아랍 거주민들에게 <삶의 질>(the quality of life) 속에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테디는 이 지역 안에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어느 날 일어나보니 또 하나의 기정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올머트 시장의 말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입증할 날이 올 것인가? 아니면 올머트 시장이 <성전산> 위에다 <3차 유태인 성전>을 건축함이 아랍 거주민들의 <삶의 질>(the quality of life) 속에 투자한다고 한 것이 하나의 기만으로 드러날 것인가?

진실로 말뚝들이 너무 높다. 자세히 조사해보면, 모든 투쟁의 근원은, 때로는 성경 기록의 분명한 이해와 시대들의 축적된 지혜를 막아버리는 전통적 신념들에서 야기되는, "지성(知性)의 상피병(象皮病/피부암)과 감성(感性)의 쇠약"으로부터 발산된다. 따라서 한 인간(다윗 왕)에 의해서 제기된 하나의 <성전부지>가 하나님에 의해서 야콥과 에스겔에게 밝히 드러내진 <성전부지>가 더 좋은 것이다!

편집자주/어제 일요일(5월 22일) 로라 부시 여사가 이스라엘을 방문하였다. <통곡의 벽>을 방문하였고, 그 다음에 <황금사원>을 둘러보았다(아래 사진). 이 사원이 자리한 곳을 모슬렘들에게는 <하람>(Haram as-Sharif)로, 유태인들에게는 <성전산>(Temple Mount)이라 알려진 곳이다. 이로서 자기네는 세계 평화를 위하여 이슬람교도를 감싸고 있다는 각본에 의한 <정치쇼>가 연출된 것이다. 한 시위자가 사원을 떠나는 로라에게, "어떻게 당신이 감히 여기에 왔어! 어째서 당신의 남편은 모슬렘을 죽이나?"(How dare you come in here! Why your husband kill Muslim?)라고 야유를 퍼부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2005.5.22) http://news.yahoo.com/s/ap/laura_bush)


<왼쪽 사진>1998년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 때, 이스라엘 <통곡의 벽>을 방문하였다. <가운데사진>로라 부시가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오는 기내에서 적은 기도문을 <통곡의 벽>에 꽂았다. 그 내용은 비밀이라고 그 여자의 대변인이 전했다(
www.telegraph.co.uk ) (2005.5.23). <오른쪽 사진> 로라 부시가 맨발로 카페트를 편 <황금사원> 터를 밟으며 걸어나오고 있다. 종교행위의 극치이다. (2005.5.22). 일부에서는 2008년 대통령선거에 출마예정자인 민주당의 전 대통령 클리턴 아내 힐러리에 맞서 로라 부시도 대통령에 출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루머가 나돌고 있다.


여기서 잠시 선지자들이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이스라엘의 그 땅에 세 부류의 분명한 백성들, 곧 ① <유다의 그 집>(the House of Judah) , <이스라엘의 그 집>(the House of Israel) , 그리고 <곡과 마곡의 백성들>(the people of Gog and Magog) 의 출현을 예언한 것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음 <3차 성전>을 위한 올바른 위치냐 그른 위치냐를 선정하는 것은, 말하자면, 그들 중에 밀로부터 독보리들을 골라내는
(편집자주/마태복음 13:25/개역=가라지) 하나의 길인 것이다.

① <유다의 그 집> 은 주로 <바빌론 사로잡힘>(Babylonian Captivity)(편집 자주/바빌론 포로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비성경적인 신학론이다. Captivity대신 exile이란 용어도 사용된다.) 그 이스라엘인들로 구성된다. 그들은 안식일을 준수하고 히브리어를 손대지 아니하고 그대로 두고 있다. 그들은 바빌론인들이 사로 잡아간 <유다의 그 왕국>(the Kingdom of Judah)을 구성한 <유다>(Judah)와 <베냐민>(Benjamin)과 레위(Levy)의 지파들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바빌론 사로잡힘과 로마인 점령의 생존자들이며, 그들의 후손들은 오늘날 <쉐파드 유태인들>(Sephardic Jews) 로 알려져 있다. (편집자주/오늘날 유태인은 크게 에쉬케나지(Ashkenazic) 유태인과 쉐파드(Sephardic) 유태인으로 구분되는데, '쉐파드'(Sephardi)는 히브리어로 '스페인'이란 뜻이다. 아래 ③
<곡과 마곡의 백성들>(the people of Gog and Magog) 참조.)

② <이스라엘의 그 집> 은 이스라엘의 분리 왕국을 이루는 열 자파로 구성된다. 이들은 위에서 이미 언급된 <바빌론 사로잡힘>(Babylonian captivity) 보다는 100여년 앞서 앗수르아인들(Assyrians)에 의해서 끌려갔다(열왕기하 17장 참조).

선지자 아모스(Amos)는 이 <이스라엘의 집>이 이방인들 가운데 혼합될 것을 미리 알렸다(아모스 9:9). 예수 그리스도가 열두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파송하실 때, 이방인들이나 사마리아인의 성읍으로도 들어가지 말고, "다만 이스라엘의 그 집의 잃은 양들에게 가라"(마태복음 10:1-6)고 명하신 것은 산헤드린(회당)에 알려지지 않은 <이스라엘의 그 집>에 관하여 지적하신 말씀인 것이다.

이같이 <유다의 그 집>은 안식일을 준수하고 히브리어를 손대지 아니하고 그대로 두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쉐파드 유태인들>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그 집>이 <유다의 그 집>과 똑같이 그 약속들의 상속자이지만, 대개가 안식일을 준수하지 아니하고 히브리어를 말하는 동질성(신분)을 유지하지 아니하니, 이는 이 열 지파의 후손들은 <앗수르인 사로잡힘>(Assyrian captivity) 중에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특성들을 상실하였고, 그 결과 북유럽과 서유럽 속으로 동화(同化)되어 버렸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선지자 에스겔의 영이 결국에는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 <벧엘>을 위해서 선택해주신 <이스라엘의 그 집>을 보여줄 것이다.

<곡과 마곡의 백성들>(the people of Gog and Magog) 은 <하자르인들>( Khazars/ 한국(汗國) 하자르인들)을 포함한다. <Encyclopdia Judaica>에 의하면, 유태교로 개종한 <튀르크파>(Turkic type)의 민족을 말한다. 그들은 730년에 1260년전에 모자이크 모형의 한 장막을 봉헌하였다. <하자르제국>(Khazar Empire)이 멸망한 후에, 이들 유태인들은 서쪽으로 이동하여 동유럽과 중앙유럽 속으로 들어갔다. <Encyclopdia Judaica>의 설명이다:

"고고학적 속성의 대수롭지 않은 정보에도 불구하고, 동유럽 안에서 유태인 집단들의 출현과 유태인 사상들의 충격적 영향은 중세시대에 두드러진다. 이 집단들은 동쪽으로부터 중앙유럽으로 이주해왔거나, 하자르인들로 인정되기 때문에, 그들이 종전의 하자르 제국에서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묵과할 수 없다."

이 하자르 개종 유태인들이 <곡과 마곡>에 속한 <튀르크 백성>(Turkic People)에 속해 있으며, 오늘날 중앙유럽과 동유럽의 <에쉬케나지 유태인들>(Ashkenazi Jews) 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 유다의 그 집>의로부터 직접 내려온 후손들은, 위에서 언급한 바 대로, 근본적으로 <쉐파드 유태인들>(Sephardic Jews) 이다. <쉐파드 유태인들>은 셈족의 기원이며, <에쉬케나지 유태인들>은 튀르크와 유럽의 기원이다. 그런데 <반유태주의>(anti-Semitism) 용어가 유럽 안에 있는 에쉬케나지 유태인들 중에서 유래된 사실이 진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동질성들이 사람의 마음 속에 굳건히 세워질 때, <곡>의 1/6의 남은 자를 생존시켜서, 북쪽으로부터 이스라엘의 그 산들로 데려오겠다는 에스겔의 예언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게 된다(에스겔 39:2):

"그리고 내가 너를 돌려보내겠고, 너의 여섯째 부분은 남겨 놓겠고, 북쪽 부분들로부터 너를 올라오게 하겠고, 너를 이스라엘의 그 산들 위로 데려오겠다."

(And I will turn thee back, and leave but the sixth part of thee, and will cause thee to come up from the north parts, and will bring thee upon the mountains of Israel:)


이것이 나치의 손들에 당했던 <에쉬케나지 유태인들>의 몰살(대학살)이요, 대게 "모이기"에 오해를 받는 유럽으로부터 팔레스틴에로의 시온주의자 이민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분명한 <에쉬케나지 유태인들 버림받음>을 낳은 이 호전적인 시온주의가, 유다와 <유다의 그 집>의 진정한 유태인들에 대한 한 홀(笏)의 약속과(창세기 49:10), 요셉의 아들들과(창세기 48:20) <이스라엘의 그 집>의 <잃어버린 열 지파>(lost ten tribes)에 대한 장자권 약속 이 두 가지를 단번에 강탈해 가버렸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명하여 <곡>(Gog)에게 알리라 하신 질문의 요지를 알려면, 오늘날 시온주의를 하나의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에스겔 38:14):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 백성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거주하는 날에, 네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Thus saith the LORD God; In that day when my people Israel dwelleth safely, shalt thou not know it?)


당신의 텔리비전을 세계 뉴스에 맞춰 놓고서, <이스라엘의 그 이름>(the name of Israel)을 강탈해갔고, <이스라엘의 그 이름>을 이방 민족들의 모임 속에 미움을 받게끔 만들어 놓은 <곡>의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현실 체크(reality-check)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라!

미국(문자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한 땅)과 <에쉬케나지 유태인들이 지배하는 이스라엘의 국가>(곡)이 아랍-시온주의 논의와 관련해서 하나씩 안전보장 이사회 결의 통과 혹은 제출을 좌절시킬 음모를 꾸며왔던 UN의 관점에서 볼 때, 누구나 에스겔을 통하여 드러내신 하나님의 분노를 깨달아야 한다(에스겔 5:7): "이방 민족들의 공의에 따라 행하지도 아니하였으므로..." (...neither have done according to the judgments of the nations...). 인류의 단정한 견해에 대한 그러한 오만한 무시는, 전능자가 <곡>은 물론 <참다운 이스라엘>( real Israel )로부터 등을 돌리시는 하나의 정당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에스겔 5:7,8):

"너희가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 민족들 보다 더 번성한 고로, 내 규례들을 행하지 아니하고, 내 명령들도 지키지 아니하며,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 민족들의 공의에 따라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나, 곧 내가 너를 대적하여 이방 민족들의 목전에 네 가운데서 심판을 행하겠노라."

(Because ye are multiplied more than the nations that are round about you, and have not walked in my statutes, neither have kept my judgments, neither have done according to the judgments of the nations that are round about you; Therefore thus saith the LORD God; Behold, I, even I, am against thee, and will execute judgments in the midst of thee in the sight of the nations.)


그러나 전능자의 저주들에 대한 이러한 불길한 예감과 집중, 그리고 전능자와 그 분의 선택하신 백성 사이에 계약의 일부로서 약속된 <복주심들>(blessings)도 이것으로 족하다. 특별히 <이스라엘인들>( Israelites )에게는 물론 일반적으로 <아브라함의 그 씨>( the seed of Abraham )에 대한 복주심들이 본질상 인종 문제이기 때문에, 그들이 <곡>과 <마곡>이냐 <이스라엘>이냐 <유다>냐 아니면 가장 일반적인 <보통 사람>에 속하는냐 하는 동질성을 고려하는 불길한 예감에는 최고의 중요성이 주어져야 하는 하나의 영적인 영역이 존재한다. 그래서 밥팀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마태복음 3:9):

"그리고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너희 속으로 말하려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나님이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 이르는 자손들이 되게 하실 수 있느니라."

(And think not to say within yourselves, we have Abraham to our father: for I say unto you, that God is able of these stones to raise up children unto Abraham.)


실제로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가족에 속하고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들에 대하여 상속자들이 될 자격이 있다. 예를 들어, 중앙유럽과 동유럽을 거쳐서 <하자리아>로부터 유래되었고, <에쉬케나지 곡과 마곡>(Ashkenazic Gog and Magog)의 전형에 속하는 <루바비치 유태인>(Lubavitch Jew) 까지도, <황금률>(Golden Rule) (편집자주/마태복음 7:12/누가복음 6:31의 교훈) 에 따라 살며, <이스라엘의 그 하나님>(the God of Israel)의 모든 명령들을 순종함으로써 <곡과 마곡>에 관해서 이루어진 그 끔찍스런 예언들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그 땅>(the land of Israel)이 끝내 이스라엘의 그 지파들 사이에 분배될 때, 에스겔의 예언을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에스겔 47:22):

"너희는 그 땅을 제비뽑아 나누어 너희와 너희 가운데 기거하며 너희 가운데서 자식을 낳은 타국인들에게 유업이 되게 할지니,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그 나라에서 태어난 것같이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들은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서 그 나라에서 태어난 것같이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들은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서 너희와 더불어 유업을 얻으리라."

(ye shall divide it by lot for an inheritance unto you, and to the strangers that sojourn among you, which shall beget children among you: and they shall be unto you as born in the country among the children of Israel; they shall have inheritance with you among the tribes of Israel.)



하나님이 에스겔의 환상을 통해 보여주신 미래의 성소로 삼을 땅


분명히 역사의 광대한 흐름 속에서, "너희 가운데 기거하는 타국인들"(레위기 17:8)에 관한 한 고대 히브리인 선지자의 이 마지막 때 예언은, 오늘날 역사적 팔레스틴을 이루고 있는 토착인 아랍 인구에 적용된다. 형제의 연합, 아브라함의 그 피가 <타인>이라고 하는 불화와 배타성과 분리성을 이겨내어 승리를 거둬야 한다!

결국은 좋건 나쁘건 하나님이 지금까지 심판자시요 집행자이심이 입증되었다. 그 분의 은혜 안에 사는 자들은 전능자가 자신의 거주지를 선정해 놓으신 그 자리, 곧 <벧엘>을 찾아 나서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다음 <3차 성전>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나서지 아니하거나, 그 정확한 그 자리를 보여줘도 믿지 아니하는 거짓 사기꾼들은 바람을 심고 있기 때문에, 회오리가 익을 것이다.

끝으로, 주님이 이스라엘을 질투하심은 <신명기 17:15>에 기록된 하나의 적극적인 명령에 대한 사무엘의 예언의 성취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 본다.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은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하나의 수도에다 하나의 시민에다 유태인들, 모슬렘들과 크리스천들이 하나같이 광활한 정착지에서, 진실로 하나의 민주적이고 통합된 <예루살렘국가>(State of Jerusalem)의 왕이 되는 것이, 예언의 영, 특히 위에서 <에스겔 47:22>에 나타난 에스겔의 영을 한결 보존하는 것이다. 여하튼 다음의 이스라엘의 성전이 속해 있는 곳을 알고 이해하고 실제로 상술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시작인 것이다. 이것이 유태인이 모든 <미스바들중의 미스바>(mitzvah of all mitzvahs/유태교의 선행 계율)를 실행해야 할 유일한 길인 것이다.

크리스천 회의론자는 예수님이 니코데모에게 전하신 그 말씀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요한복음 3:12):

"내가 너희에게 땅의 일들을 알려주었는데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내가 하늘의 일들을 말한다면, 너희가 어떻게 믿겠느냐?"

(If I have told you earthly things, and ye believe not, how shall ye believe, if I tell you of heavenly things?)


그리하면 모슬렘은 <황금의 돔>과 <알 아크 사원>이 사라지는 공격의 위험으로부터 마음을 놓을 수 있으니, 모두가 행복하게 될 것이다!

<Created/20050514> <Updated/20050528>